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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토기 신기종의 출현과 중국도자기의 영향(百濟土器 新器種의 出現과 中國陶磁器의 影向)

  • 분류 고고·미술 > 유물
  • 권호수 제67호
  • 저자 이명엽
  • 발행일 2006년 6월
  • 게재지 고문화
  • 발행처 한국대학박물관협회

목차

I. 序論
II. 中國土器 製作技術 및 陶磁器 流入
III. 百濟土器 新器種 出現과 陶磁器의 影響
IV. 新器種 出現의 意味 -結論을 대신하여-

요약

지금까지 百濟地域에서는 100여 개체가 넘는 中國 陶瓷器가 출토되었다. 이는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것으로, 대개 西晋代에서 隋 ㆍ唐代에 걸쳐 제작된 것들이다. 漢城期 百濟(Hanseong Baekje Period)에서는 東吳末~東晋初에 제작된 施釉陶器를 비롯하여 兩晋代의 磁器들이 수입하였는데, 이 시기는 마침 백제토기에 있어서 신기종이 출현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백제토기 신기종은 백제의 국가성립과정에서 새로운 토기제작기술의 도입과 중국 도자기의 모방으로 출현하게 되었다. 토기 제작술은 중국 군현 특히 낙랑의 토기제작기술의 영향인데, 원삼국 당시 3단계에 걸쳐 유입된다. l단계는 2세기 중반경 타날문토기의 출현으로 녹로성형 기술, 낙랑(계)토기도 함께 유입되었다. 2단계는 3세기 중반경으로 깎기, 마연, 암문등의 제작기술이 유입되며, 마지막으로 313년과 314년 차례로 축출된 낙랑군과 대방군 주민의 유입으로 전반적인 생산기술의 유입이다.
백제국은 3세기 중반경에 있었던 대규모의 전쟁으로 중국 군현 및 중국과의 교역을 독점하면서 고대국가의 틀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수입되었던 선진문물은 위세품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어 백제의 국가 지배 방식의 하나로 변경지역의 수장층에게 賜與하여 지배력을 공고히 하였다. 한성기 백제의 변경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에서는 중국 도자기가 출토되었는데,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로 수입된 도자기는 한정된 수량으로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미흡하여, 백제 중앙 지배층이 의도적으로 중국 도자기를 모방한 토기를 제작하였는데, 이것이 백제토기 신기종이다.
백제토기 신기종은 중국 도자기와 같은 위세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도자기와 함께 지방 수장층에게 사여되었다. 이처럼 백제토기 신기종은 백제 중앙의 국가 지배 방식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던 것이다. (필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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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제지한국대학박물관협회 학술대회 제59회 추계학술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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