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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代日本의 한반도계 氏族과 역할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한일관계사연구논집 3
  • 저자 연민수
  • 발행일 2005년 6월 5일
  • 게재지 임나 문제와 한일관계
  • 발행처 경인문화사

목차

Ⅰ. 서언
Ⅱ. 이주시기와 그 배경
Ⅲ. 西文氏의 도래전승과 出自
Ⅳ. 東漢氏의 도래전승과 出自
Ⅴ. 도래인의 기술과 문화
Ⅵ. 결어

요약

일본 고대의 대표적인 한반도계 씨족인 西文氏와 東漢氏의 도래 전승에서 이들 후예들이 선조의 출자를 중국의 오래된 황제에게 구했던 것은 높은 가바네(姓)를 얻기 위한 현실적 욕구와 기대 때문이었다. 이들이 새로운 姓을 하사받기 위해 올린 상표문에도 나타나듯이 자신들의 조상이 중국황제와 직결된다는 자체가 신분상승의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고 보인다. 그것은 당시 일본과 당과의 관계가 깊었고 견당사를 통한 문물의 수입 등 唐風化 경향이 현저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상대적으로 신라와의 관계는 779년을 끝으로 공적관계가 종료를 고하고 헤이안조에 들어가면 사적교류로 전환된다. 특히 8세기 전시기를 통해 일본의 신라에 대한 적시관, 번국의식은 양국을 긴장관계로 몰아넣어 한반도계라는 것이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지는 못한 것 같다. 《신찬성씨록》등 고문헌에 보이는 도래계 중에 신라계로 분류되는 씨족이 가장 적은 것도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한반도계 중에서 백제계를 주장하는 씨족이 압도적으로 많고 중국계를 주장하더라도 백제에서 몇 세대를 거친 중국계 백제인으로 선조의 출자를 구하고 있다. 이것은 백제와 일본과의 역사적 친연관계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일이다. 헤이안 천도를 단행한 환무천황은 자신의 모친이 백제 무령왕의 아들 순타태자에서 나왔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백제에 출자를 구하는 것이 중국계에 비해 현실적인 교류국이고 게다가 중국이라는 거대제국의 황제에서 출자를 구한다는 자체가 일본 지배층에게는 무형의 힘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가야제국에 직접적으로 선조의 출자를 구하는 씨족이 적은 거은 일찍 멸망한 탓도 있겠지만 실은 백제에 병합된 가야계도 상당수 존재했다고 본다.
8세기 말의 西文氏와 東漢氏의 후예들은 자신들의 선조를 중국계로 구하는 작위적인 개변을 했지만 관련사료의 검토를 통해 백제계와 安羅를 중심으로 한 가야계였음이 들어났다. 각각 왕인과 아지사주가 시조로 하는 이들 씨족집단의 도래는 한반도의 전란이 가장 극심했던 5세기 전후의 광개토왕의 남정기였다. 이 전란에서 가장 타격이 컸던 백제와 가야제국은 국가적 혼란에 휩싸였으며 일부의 주민은 전란을 피해 일본열도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이주의 파동은 이미 중국의 전국시대말에서 진한제국의 교체라는 동아시아의 정치적 변동기에도 나타났으며 5세기 후반의 고구려군에 의해 백제 한성기의 멸망기, 6세기 2/4분기의 가야제국의 소멸기, 7세기 후반의 백제, 고구려 멸망기에도 나타났다.
이러한 인구의 이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직 일본열도의 통일된 왕권의 성립이나 각종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정치적, 사회적 조건과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열도는 중앙의 대화정권에 통합되지 않은 지방의 재지세력이 의연 존재하고 있었고 대화정권조차 다수의 유력호족들의 연합체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화조정을 비롯해 중앙과 지방의 유력호족들은 이들 도래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이 갖고 있던 지식과 기술 등 선진문화는 각자의 세력을 확대해 나가는데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아스카시대의 최대의 호족이었던 蘇我氏가 東漢氏系를 자신의 휘하에 둔 것도 세력기반의 확충을 위한 것이었고 그로 인해 왕권을 능가하는 권세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도래인들이 담당한 역할은 각 방면에 걸쳐 있고 그 영향 또한 지대하다. 문필에 뛰어난 西文氏와 王辰爾계는 후히토(史) 집단을 이루면서 대화조정의 문서행정에 큰 공을 세웠다. 기록으로서의 문자는 학문, 사상, 제도, 예술 등 왕권과 국가가 유지, 발전해 나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東漢氏의 주도로 행해진 생산과 관련된 기술문화는 고대 일본의 부민제의 기초를 만들었다. 韓鍛冶部, 陶部, 縫·織·染·錦織과 같은 직물, 염색기술, 기마전법에 필요한 마구제작, 피혁기술 등은 국가적 물품 조달을 위한 기초적 생산조직의 정비로 이어졌다.
일본 고대사회를 정신적, 사상적으로 전환시켰던 것은 불교와 불교예술이었다. 백제에서 전해진 불교는 이에 동반하여 승려, 궁전과 사원건축에 필요한 각종 공인, 불상을 만드는 佛師, 회화, 음악 등 수많은 사람들이 공적, 사적으로 건너갔다. 이들 중에는 일본 불교계의 최고의 지위에 오른 승려도 있었으며 정치, 외교적 고문 역할, 또 외교의 일선에서 활약한 인물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도래인의 역사는 일본 고대국가형성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일본 고대사회에서의 이들이 담당한 역할과 그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와 같은 일본 고대사상 지워지지 않은 깊은 족적으로 남을 것이다. (필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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