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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고대도성-왜국과 백제 도성제의 관계성에 대하여-(동아시아의 古代都城-倭國과 百濟都城制의 관계성에 대하여-)

  • 분류 고고·미술 > 건축
  • 권호수 제19집
  • 저자 井上和人
  • 발행일 2010년 12월
  • 게재지 마한백제연구
  • 발행처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목차

1. 일본 고대 왕궁의 존재 형태
2. 한반도의 도성과 일본의 왕궁
3. 중국대륙의 도성과 일본의 도성
4. 맺음말

요약

도성의 한자 뜻은 성벽, 즉 나성으로 둘러싸인 수도를 말한다. 당나라 長安城과 일본 平城京과 같은 정확한 사각형 평면 도성을 구형(矩形)도성으로, 일본 최초로 건설된 구형도성은 694년에 수도가 된 藤原京이다. 백제 사비성은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왕경을 둘러싼 나성의 존재가 점차 밝혀지고 있다. 사비성의 경우 남측과 서측을 크게 사행하는 금강(백마강)이 감싸고 있지만 동과 북은 가파르고 험준한 구릉지대와 능선에 따라 축조된 나성으로 방비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나아가 왕경 주변 산지에는 복수의 산성을 배치하고 있어 주도면밀한 왕경 방위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 삼국의 도성 중에서 일본 왕궁 또는 도성에 영향을 준 것은 백제 사비성의 존재형태, 특히 방어시스템 이었다. 飛鳥에 처음으로 왕궁을 조영한 시기는 630년으로, 당시 당나라에 의한 군사적 정복전쟁의 위기감에서 왕권을 방비하기 위해 좁은 飛鳥의 땅을 선택한 것도 험한 지형에 의한 왕궁방위방식을 채택한 백제 사비성의 방어시스템이었다. 왜국(倭國) 정권은 이미 4세기 단계부터 백제와 긴밀한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왜국과 백제 양국에 있어서 국가를 유지하는데 위협적인 존재였던 신라 및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관계였다. 5~6세기 대에는 왜국과 백제 사이의 외교가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지만 7세기 중반까지는 기본적으로 선린적 외교관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이 왕권 방비책으로 백제 방식을 채용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660년 백제의 멸망, 백제 부흥을 위한 왜국 구원군의 663년 백촌강 해전 패배로 이어지는 수년 사이에 飛鳥에서는 나성으로 볼 수 있는 왕궁 영역을 둘러싼 구획시설 조영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나성 구축도 백제 사비성의 방위시설 체제를 이전 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필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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