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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환경

백제사와 지명소고 : 부여를 중심으로(百濟史와 地名小考 : 扶餘를 中心으로)

  • 분류 지리·환경 >
  • 권호수 제146,147호
  • 저자 홍사준
  • 발행일 1980년 8월
  • 게재지 미술사학연구
  • 발행처 한국미술사학회

목차

一. 大王浦
二. 自溫臺
三. 扶餘頭里(부여머리)
四. 破陣山
五. 石城山古(古省城)
六. 落花岩(墮死岩)
七. 領詔院
八. 自旺里
九. 부장골

요약

역사를 지닌 곳은 반드시 전설이 남아 있게 되고 지명 또한 역사에 대응된 전언이 남게 된다. 부여는 본시 소부리의 지명이던 것으로 백제 성왕 16년 봄 웅진에서 이곳으로 천도한 후 국호를 남부여라 하였던 것을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그 후 백제 678년 사직이 나당군 18만에 도성이 함락된 후는 남부여가 부여로 남게 된 것이다.
백제왕족은 만주지방의 부여족으로부터 출발하기 시작하여 남하하여 마한 54국 중 백제국을 마한왕으로부터 할양받은 이후 위례성 웅진을 거쳐 최종 소부리에 정도하는데서 남부여국의 국호를 정립한 것을 추정하였다.
성왕이 제3도성을 결정하는 데에는 삼근, 동성 양대에 걸쳐 사비원에 삼차출렵한데서 그 지세가 국도로서 손색이 없었던 것을 확인하고 성왕 146년 이도한 것으로 추측 된다. 부여의 사비도성 내외의 지명에는 성왕이후 위덕, 혜, 법, 무, 의자왕대에 걸쳐서 123년간 남긴 역사적 지명이 있음에 이를 밝히고자 한다. (연구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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