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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상으로 본 가야와 일본 황실-“비류 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의 비판(言語上으로 본 加耶와 日本 皇室-“沸流 百濟와 日本의 國家起源”의 比判)

  • 분류 기타 >
  • 권호수 제3집
  • 저자 강길운
  • 발행일 1985년
  • 게재지 논문집
  • 발행처 수원대학교

목차

任那; 彌摩郡; 邪馬台國 : 倭
弁辰(卞韓) : 辰國 : 狗邪國 : 月支國 : 馬韓 : 辰韓
眞氏; 解氏: 蓋國 : 孤竹國 ; 餘氏 : 金官國
日本皇室과 伽倻語
結論

요약

본고는 비류백제는 가야, 일본황실과 무관하며 가야 지배층은 드라비다어를 쓰는 종족으로서 이들이 일본어 건너가 일본지배자가 되었음을 입증하고자 쓰는 것이다.
먼저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이라는 설의 근간을 이루는 ‘담로’라는 말은 본래 드라비다계인 가야지배층어로서 가야제소국이 백제에 의해 정벌된 뒤에 읍촌의 이름으로 쓰인 것이 바로 22담로인 것이다.
진씨가 온조백제의 외성이라는 것만으로 그것이 비류계라거나 웅진 백제 남천 이전에 누군가가 도읍하였었다 하더라도 그 세력이 비류백제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해상팔국을 포함한 서남한 일대의 소위 동한지지는 모두 드라비다어와 동계인 가야어권이므로 몽고계어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 비류백제권이라 볼 수 없다.
일본 황실의 건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가야어나 그와 동계인 드라비다어와 대응될 뿐 몽고어와는 대응이 없으므로 비류백제와 일본황실관계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
말기의 여씨 백제는 실질적으로 가야계로 환골탈태되어 있었을 것이므로 여씨는 진씨의 다른 기록으로 추정된다.
일본서기 신공왕후 49년조의 가라7국은 신라세력권에 들어있어 자립하지 못하던 것을 백제권에 넣었던 것이다.
응신천황 8년 기사는 응신천황이 습취한 5개지역을 돌려주었다는 것으로 일본 황실은 비류백제계라고 하나 그것이 아니라 필자의 추론처럼 일본황실이 가야계이고 백제왕실은 동족이므로 일시적인 분쟁에 그치는 것이 당연하다.
요컨대 비류백제는 따로 존재한 것 같지 않으며 그들이 일본황실이 되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려우며 도리어 일본황실이 가야계라는 것이 재확인될뿐이다. (필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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