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序言
二. 三國史記에 나타난 三國의 王
三. 三國時代 巡幸의 政治的 意味
四. 巡幸을 通하여 본 王의 活動
五. 結語
요약
삼국사기에는 일찍이 3국을 하나의 완성된 국가로 인정하였고 동시에 왕을 절대적인 통치자로서 여러 가지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왕은 종교, 정치, 군사, 외교 및 재판권의 최고 지배자로서 필요시는 순행을 통해 이를 확인하였으나 어느 정도의 견제와 제약을 받고 있었음도 사실이었다. 따라서 고대왕국의 왕은 일반인과 구별된 여러 가지 신체적 특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왕의 교체는 하늘의 뜻이기에 몇 가지 두드러진 천재나 천변과 관련있다. 다만 왕의 평균 재위기간이 22년 정도로 대개 장년기에 즉위한 이유로 진보적 정책 추진이 아닌 전왕의 정책 답습과 같은 보수성이 강하기 마련이다.
순행은 일반적으로 민심 수람의 목적을 띤 왕의 지방출장이라는 문헌상의 뜻보다 다른 의미가 더 컸다. 출순시기가 고구려, 백제는 1~3세기에, 신라는 8~9세기에 집중되고 춘계에 빈번히 나타나는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순행은 왕권의 불안정과 사회혼란기에 집중되는 정치적 출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수렵이나 구휼행이 아니며 기록 속에 내재된 실질적 목적파악이 필요하다.
백제는 천재지변과 순행이 큰 관계를 갖고 있어 정치와 같은 비중을 차지한다. 정치적 이유로는 축성과 관계된 것이 많은데 백제사회의 성격과 그 취약성을 반영한다. 왕권이 3국 중 가장 약했기에 전승과 순행이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순행은 중국의 천자가 행한 왕도정치의 구현이란 근본 의미를 갖지만 삼국의 경우 그 시대의 필요성에서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띠고 계승되었다. 더구나 시대에 따라 그 정치적 의미가 달랐다. 왕건의 강도에 따라 그 빈도가 차이나기에 비교적 정치적 안정과 절대왕권을 유지한 신라가 순행을 적게 하였다. 3국초기와 통일신라말에 집중적인 출행은 우연이 아니다. 왕권이 약하고 정치가 어지러울 때 순행이 집중되었으나 3국은 직접적인 출행동기의 차이가 있다. 정치적 목적을 띠었을망정 왕권의 강도나 사회적 요구에 따라 천재지변과 연결될때는 백제가 우선하였고 신라는 가장 관련이 적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