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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적기단 건물지
백제공방시설이 폐기된 후에 다시 들어선 백제건물이다. 전체적으로 훼손이 심하여 전체규모는 확인 할 수는 없으며 잔존규모는 동서 9.5m, 남북 2.5m 정도이다. 기단은 암키와를 세로로 축조한 형태이며 건물지 내부에서는 백제토기, 중국청자편이 다량 확인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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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제작소
동서 2.75m, 남북 3.7m 규모의 철기제작소이다. 철기가공 흔적으로 불에 탄 흙바닥과 숯, 재 등이 확인되었고, 시설로는 담금질하는 원통형 용기와 이를 연결하는 도수관, 노의 시설등이 함께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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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시설
백제왕실에 필요한 장신구를 제작하던 공방터로서 이를 분석한 결과 금, 은, 구리, 철 등으로 밝혀졌다. 특히 금의 경우는 순금에 가까울 정도로 양질의 금속을 자체로 제작하였으며 은을 혼입하여 합금을 만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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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백제 사비도성의 도시계획 방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구로서 너비 8.9m의 남북대로와 너비 4m의 동서소로가 확인되었다. 도로의 양측에는 배수를 위한 석축배수로가 있으며 도로의 노면은 점토로 다져 포장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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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지
이 건물지는 남북도로를 관망 할 수 있는 위치에 설계된 건물이다. 지붕재가 놓인 상태로 보아 네면이 모두 1칸씩으로 기둥구멍 직경이1.3m~1.5m로 비교적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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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규모는 동서 10.6m, 남북 6.2m의 장방형의 형태이며, 깊이는 1~1.2m로 주변에 5~6단의 가공된 석재를 이용하여 쌓았다. 연못의 북쪽에서 수키와를 이용하여 만든 배수관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연못으로 연결되는 입수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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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동헌
조선시대 부여현의 관아 건물로 동헌·객사·내동헌 등이 남아있다. 동헌은 당시 부여현의 공사를 처리하던 곳으로, 고종 6년(1869)에 지었고 1985년에 크게 수리하였다. 동헌은 앞면 5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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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영당
홍가신·허목·체제공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홍가신(1541~1615)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 22년(1567)문과에 급제하여 강화부사, 형조참판, 강화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선조 37년(1604)에는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공신 1등에 책록, 이듬해 영원군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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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객사
이곳은 조선시대 부여현(扶餘縣)의 관청으로서 동헌(東軒) · 객사(客舍) · 내동헌(內東軒)(내아:內衙)이 보존되어 있다. 동헌은 부여현의 관아로 1869년(고종6년)에 다시 지었으며 초연당(超然當), 제민헌(濟民軒)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