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근초고왕대에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하고 정복의 대제국으로 발돋움하였다. 왕위계승에 있어 부자상속 기반을 확고히 하여 왕권을 강화했으며 고흥으로 하여금 고대국가완성의 상징인 역사를 기록하게 하였다. 중원에 자리한 동진과 친교를 강화하여 발달된 남조문화를 수입하여 일본에 전래시키고 369년에는 마한을 정복, 대방고지를 수복하고 일본과 요서지방에 그 세력을 확장하였다. 근초고왕은 평양전투 이후 고구려 공격을 위하여 바다건너 요서, 산동 일대까지 진출하였다. 백제의 요서정복론은 그 사실을 취록하고 있는 사서가 대부분 중국의 사서이다. 특히 역사 기록에 자국이 외부민족에게 지배된 사실을 가능한 명확히 기술하지 않는 것이 통례로 더욱이 중화사상이 지배적인 중국인들은 자국민을 제외하고는 전부 야만시해왔다. 또 혹자는 백제의 당시 항해술의 미지함을 들어 부정하지만 당시 동양제국의 항해술은 상당한 경지에 있었고 백제는 중국과 일본의 상품을 중계할 정도였다.
당시 백제는 기마민족의 성격을 띤 고구려군을 막기 위한 유일한 협공전법은 후일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도 사용한 방법이다. 중원 또한 전란기를 맞이하여 남조의 송 또는 동진이 북조의 제국들이 고구려와 친선을 강화하므로 남하하는 북방족을 막기 위하여 백제 중원진출을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빙성이 없는 단편적인 몇 개의 사료를 가지고 실존인양 내세우는 임나일본부의 주장보다는 현실성 있으며 백제의 요서경략설은 부정하기에 앞서 더 연구되고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