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史記》(百濟本紀)의 내용을 분석해 보았고, 그를 바탕으로 시대 구분을 꾀하였다. 本紀 내용은 크게 政治·天災地變·戰爭·外交의 4항목으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볼 때 天災地變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政治記事였으며, 戰爭·外交 기사가 뒤를 잇고 있다.
우선, 제1권(처음)과 제6권(끝)은 天災地變이, 제2·3·4권은 政治記事가, 제5권은 外交記事가 각각 제일 큰 비중을 갖고 있어 각 시대의 성격을 반영해 준다. 그리고 제4권은 정치기사가 전체의 절반이나 되어 熊津·泗沘 시대의 정치적 발전을 보여주었고, 제5권은 6세기 중엽 이후 3국외 세력 변천에 따라 변모하는 外交戰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政治 기사의 내용에 있어서도 가장 많은 E의 형태가 大赦·勸農·敎恤 및 外交防備策이 중심이어서 백제사회의 성격을 반영해 주었으며, 그리고 A의 높은 비중은 백제가 「防禦型의 國家」임을 실질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정치기사에 있어서는 고이왕보다 온조대에 실제적인 「국가완성의 의미」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큰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백제의 早期發展相을 확인해 주었고, 고구려와 같은 북방계의 특질은 고이왕대의 일련의 성격 변질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찾을 수 있었다. 다만, 고이왕과 무령왕을 각각 시대구분의 계기로 하여 백제를 3분할 수도 있었다.
천재지변기사는 그 비중의 문제보다 그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중요한 사실이다. 천재지변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정치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늘과 땅 사이의 관념적 사고는 천재지변에 있어서 불교·도교·오행사상과의 복합적 관련을 가져왔으며, 그에 따르는 정치적 기능을 강조케 되었다. 특히 천문학의 조기발전상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일식·혜성·유성·지진 등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주로 전쟁과 사망(왕)의 예고로 부각되어 갔다. 따라서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를 숙제로 남겼다. 전쟁기사는 초기는 중국과, 중기 이후는 羅·麗와의 싸움의 내용이었으나, 특히 羅·麗와의 싸움이 전체의 전쟁 중 7할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백제사회의 발전과정에 큰 장애요인이었음을 나타낸 것이며, 따라서 5세기 이후 외교적 진출에 역점을 든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3국간의 상호관련과 비교, 그리고 정치·천재·전쟁 등의 전체적인 파악이 이루어진 연후에야 보다 구체적인 4항목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종합적인 분석은 後稿에서 다룰 예정이다. (필자 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