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건국연대는 삼국사기 전하는 건국연대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하여 각각 태조왕대, 고이왕대, 내물왕대 때부터 국가기반이 성립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설이었다. 이병도박사는 유이민 파동을 주류로 잡으면서 삼한사회의 전반적인 전개를 고찰하였고 백제 건국에 있어서는 낙랑대방군과의 관계, 하북위례에서 하남위례로의 천도, 제도 마련, 중국사서의 구태시조설, 진대의 백제 국명의 등장 등으로 고이왕대 국가기반이 세워진 것을 강조하였다. 이를 그대로 따르면서 그보다 앞선 시기의 것으로 전하는 전승자료를 보다 중시하려는 것은 그 전승이 있어 그것이 담는 성장과정이 고이왕대에 국가기반의 隆起가 가능하였던 까닭이다.
고이왕 이전, 하남천도 이전의 백제 사회의 성장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사를 음미해야 한다. 백제가 처음 전국을 남북일부로 놓고 지배영역이 커짐에 따라 동서2부를 가치한 것은 훗날 오방제에 선행하는 것이며 6좌평 제도 역시 부여천도이후 완비된 것으로 지적한다.
이병도 박사의 견해에 재고할 여지가 있기도 하나 삼한사회의 변천과정에 대한 이해와 백제의 국가기반의 성립이 고이왕대라는 설에 대해서는 그대로 추종하는 바이다. 근년 고고학적 연구가 진보됨에 따라 많은 문제들이 있더라도 문헌연구를 더 촉진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어 우리 학계를 위하여 좋은 일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