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중엽 사비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백제는 16관등제의 실시․22部司의 설치․ 5部․5方制의 실시 등, 일련의 국가체제 개혁은 단행했다. 이때 개혁의 일환으로 祀典의 개편이 병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남조 梁으로부터 五帝信仰을 수용했다. 양에서 오제는 鄭玄說에 따라 昊天上帝 아래에 있으면서도 五方을 관할하는 天帝로 인식되고 있었다. 백제는 이러한 오제신앙을 수용함으로서 왕권의 우월성을 확보하는 한편, 귀족세력의 특권적 지위도 보장하였다. 따라서 백제에 있어서 오제신앙의 수용은 왕권과 귀족세력의 타협과 공존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것은 당시 추진된 백제의 일련의 개혁이 어떤 성격의 것이었나를 짐작케 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왕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추론이 용납될 수 있다면, 백제의 천신신앙은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나름대로 특색을 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제의 경우는 전통적인 天地合祭를 하늘과 오제에 대한 제천으로 대체함으로서 왕권과 귀족세력의 공존 내지 타협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귀족세력의 상대적 강성이란 정치적 특수성이 백제로 하여금 오제신앙을 수용하고 제도화하게 했다는 것이다. 끝으로 백제의 天 및 오제 제사가 어떤 형태였을까를 추론해 보고자 한다. 우선 제의의 장소는 백마강변이 아니었을까 한다. 왜냐하면 고구려의 제천행사인 東盟祭가 水邊에서 거행되었기 때문이다. 또 突厥의 5월 제천행사가 他人水에서 거행된 것도 방증이 될 수 있겠다. 또 제사의 과정은 먼저 오제를 모신 다음, 최고신인 昊天上帝를 모시는 순서가 아니었던가 한다. 이것은 성주신과 오방신을 함께 모시는 현행 민속의 성주굿을 토대로 상상한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