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인들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古朝鮮과 夫餘로 이어지는 太陽崇拜思想, 洞崇拜思想, 北斗七星信仰. 별자리信仰, 五方信仰 등을 가지고 있었다. 왕실에 의해 초청된 摩羅難陀는 東晋을 경유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로 그는 신통력을 지니고 백제인들이 숭배해온 동쪽 과 남쪽의 黔丹山에 들어가 수도를 하는 한편 고구려, 신라의 공격이 우려되는 요충지부근의 산에 올라 수도를 함으로써 黔丹禪師로 칭송받으며 백성들에게 불심으로 안위를 하였다. 백제는 한산에 여러 절들을 지었는데 현재 하남시 金岩山의 폐사지에서 나온 “藥井寺”라는 명문은 『東國輿地勝覽』卷6, 廣州, 佛宇條에 “藥井寺在漢山” 이라는 글과 부합되어 이곳이 바로 백제가 불사를 대대적으로 일으켰던 漢山이였음이 밝혀졌다. 아울러 고골의 중심부 평지에 자리 잡은 폐사지에서는 “天王”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절터가 발견되어 義慈王 당시 扶餘지방에 있던 天王寺가 이곳에서 출발한 절이였음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이 절은 高麗시대에 이곳을 佛敎 初傳地로 대대적인 성역화를 하는 가운데 원래 목탑에 모셔져있던 부처님의 진신사리인 佛舍利를 전탑으로 고쳐지으면서 안치하였고 그 절이 폐사된 朝鮮 世宗 때에는 궁궐로 봉안되기도 하였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대의 鐵佛이 조성되고 태조는 璨幽와 같은 고승을 초빙하여 주지로 삼은 거대한 사찰이다. 그와 아울러 그 서쪽에는 이것에 버금가는 桐寺라는 거대한 사찰을 조성하였는데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최대의 大塔址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황룡사 雉尾에 버금가는 치미편과 도깨비와당편이 발견되었다. 그 외에도 이곳의 명문거족이 중수한 神福禪寺라는 사찰을 비롯하여 藥井寺, 奉水寺, 法華寺, 黔丹寺, 북쪽사지, 호랑이굴절터, 禪法寺, 안샘재절터, 과목산절터 등 수많은 사찰들이 발견되어 있어 新羅시대의 南山과 비슷한 곳으로 현재 백제시대의 도성으로 거론되고 있는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부근에서 단 하나의 절터도 발견되지 않은 것에 비교하면 이곳이 바로 백제시대 신앙의 중심였던 漢山이였음이 자명해진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