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한반도 西南地域의 약 9세기 동안의 文學的 狀況을 共時的, 通時的 方法으로 시대구분 할 수 있는 用語로는 그 특수성에 비추어 아직은 ‘百濟’라는 王朝名稱이 通用될 수밖에 없다. 2. 百濟文學의 지리적 배경은 三面의 바다와 內陸의 사계 변화에 따라 서정적 豊饒의 要件이 되었고, 地名은 山名을 歌名으로 하면서 향토적 정서를 획득함으로써 전통의 기반이 된 것이다. 3. 百濟의 建國 시기는 神話不姙期였기 때문에 王權强化說話 등 전설적 요소로 대체된 굴절, 縮小型의 模型을 보여 준다. 4. 百濟文學의 주요 思想的 배경으로 巫覡信仰, 儒敎, 佛敎 등을 들 수 있는데 女巫들의 집단연출일 것으로 생각되는 강강수월래나 부녀자들의 치성풀이 등에서 「井邑歌」와 같은 달 노래나 望夫歌 들의 淵源的 深遠性을 알 수 있다. 5. 百濟人은 본시 儒學의 융성함을 포용할 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漢字의 傳來와 함께 본격적인 儒學思想이 전파되어 百濟文學, 특히 한문학의 題材와 그 文體에 깊이 상관하게 되었다. 蓋鹵王의 表文, 견훤의 簡札, 성충의 上疏文, 「智異山歌」의 貞烈觀, 興首, 階伯 등의 最後, 宮女들의 投死岩傳說, 百濟復興郡의 활동 등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6. 百濟佛敎는 왕즉불의 北方佛敎였기 때문에 東晋과의 우호관계는 물론 문화적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줌으로써 왕권강화에 공헌을 했는가 하면 『魏書』, 『日本書紀』등에 실려 있는 외교문 가운데서 보는 불교적 분위기의 유려한 修辭와 百濟 老宰相 砂宅智積의 堂 塔讚揚銘文 등은 당시대에 보기 드문 뛰어난 騈儷體의 문학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