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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서안의 고구려·백제·왜(渤海西岸の高句麗·百濟·倭)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39
  • 저자 平井進 (평정진)
  • 발행일 2001
  • 게재지 古代文化を考える
  • 발행처 東アジアの古代文化を考える會同人誌分科會

목차

Ⅰ. 遼東と高句麗と百濟 (요동과 고구려와 백제)
Ⅱ. 倭人と倭王權 (왜인과 왜왕권)

요약

?한서? 지리지를 보면 낙랑군에 조선현이 있다. 종래에는 낙랑을 현재의 북한의 평양시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도군이 현재의 요령성과 화북성의 경계의 근처에 있다면 낙랑군 또한 그 동쪽에 인접하여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진나라의 만리장성은 하북성과 요령성의 경계에 위치하였으며 당시 현도군에 속한 고구려현은 노합하 지방에 있었다. 그리고 낙랑 또한 현도군이 하북성과 요령성의 경계에 있기 때문에 그 동쪽에 인접한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후 고구려는 ?삼국지? 동이전의 백고왕의 장자 拔奇(발기)와 동생 伊夷模(이이모)의 기사에서 보이듯이 요서군에서 요동으로 이동하였다.
백제는 ?송서?에서 요서를 점령하고 있었다는 기사가 있고 ?양서?에서도 그러한 기사가 확인되기 때문에 요서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광개토왕릉비에서 보이듯이 고구려가 강해져 백제왕이 고구려에 복종하게 된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관미성의 함락 이후 백제는 390년대가 되면 발해 서안에서 후퇴하여 남한으로 이동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은 남한으로 이동한 백제 왕권이 그 고지를 부르던 명칭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백제는 538년에 그 국호를 남부여로 부르게 된다. (연구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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