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전반에 왜왕권, 백제, 안라의 외교를 담당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阿比多(아비다), 佐魯麻都(좌로마도)와 같이 국가간을 이동하며 정보, 인간, 물자의 교류를 생업으로 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왕에 귀속되어 정보, 인간의 이동을 담당하였다면 이는 고대 왕권 외교의 일부였다. 왜왕권과 안라왕이 신라의 압박과 백제의 개입을 외교로 타개하려고 할 때 국제적으로 연계가 있는 아비다 일족과 좌로마도 일족의 영향력과 정보를 이용하려고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왜국은 백제에 구원군을 파견하면서 국가간의 심한 대립과 한 국가의 소멸을 직접 목격하였고, 이후 당으로부터 침공을 위협받는 국가적 위기를 체험하였다. 국가가 소멸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일본서기? 편찬 세대에게는 왕권간을 이동할뿐 아니라 「재안라제왜신」이면서 신라왕에게서 직위까지 받는 등 ‘이중의 종속’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좌로마도가 신라에 접근하는 행위를 ‘악행’으로 탄핵하는 것은 백제 성왕이나 ?일본서기? 편찬 세대와 일본의 율령국가의 인식이기도 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