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의 한자문화 수용의 행보를 보면 도래인이 담당하였던 역할은 컸다. 왜 왕권에서는 중국대륙, 한반도와의 외교관계와 재정운용에 있어서 문서 관리, 둔창경영의 민중파악을 위한 각종 관리 등 蘇我氏(소아씨) 아래에서 도래인이 크게 활약하였다. 불교의 초기전개에서도 도래승과 도래기능자들의 존재가 컸다. 이는 한반도의 동란 등을 겪었던 많은 도래인이 건너왔던 것이 왜에 수혜기와 철기 생산, 직물, 토목 등의 여러 생활기술 발전을 초래한 일체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도래인의 활약 배경에는 왜 왕권측의 적극적인 선진문화 수용과 독점의 의지가 있었다. 왜의 대왕이 외교권을 독점하여 중국의 황제로부터 칭호를 받거나 대외관계를 장악하여 선진문화, 기술을 일원적으로 장악함으로써 열도 내 지방호족에 대한 지배, 종속관계를 확보하였던 것이다. 왜 왕권 내에서도 소아씨와 같이 도래계씨족과 결속하여 적극적으로 외교, 재정, 문서실무의 직무를 볼 수 있는 실력을 획득한 씨족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