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 백제시대 도교문화의 내용을 원지와 운모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몽촌토성의 발굴에서 확인된 원지는 한성시대 백제인의 도교적 정신세계를 투영한 물질문화의 구현의 장이다. 백제는 원지를 중시하였다. 도교의 사상적 근간이 되는 『노자』의 사상을 이해했던 근구수왕을 이어서 그의 아들 진사왕은 궁궐에 도교적 이상을 구현하는 원지를 조성했다. 진사왕은 궁실을 고치고 수리하였으며 못을 파서 산을 만들어 기이한 새와 특이한 화초를 길렀다. 진사왕이 조성한 원지는 몽촌토성의 발굴로 확인되었다. 한성백제시대에 원지에 투영된 정치와 도교사상의 의미는 웅진과 사비시대에도 그 전통이 이어졌다. 웅진시대의 동성왕은 궁궐 안에 못을 파고 새를 길렀으며 사비시대의 무왕은 궁남지를 파고 그 안에 섬을 축조하여 방장선산에 비겼던 것이다. 방장선산을 궁남지에 만들었던 것은 신선사상과 관련된 도교 문화적 요소가 원지에 투영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백제에서는 한성시대부터 이미 질병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다. 질병에 대처하는 의료기관으로 사비시대에는 약부가 설치되었다. 백제에서 최고의 의료 기구를 약부로 칭한 것은 백제가 백제의 생태환경에 맞는 약재를 발굴하고 연구한 본초학을 중시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백제에서는 한성시대부터 본초학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우수한 약재인 인삼이 일찍부터 중국에 알려져 남조 양나라 도사 도홍경의 『본초경집주』에 수록되어있는 점으로 알 수 있다. 풍납토성 경당지구 9호 제사유구에 대량의 운모가 출토되었다. 운모는 본초학에서 불로장생의 선약으로 분류하고 있다. 동진시대 도사인 갈홍은 운모를 선약으로 보고 그것을 오랫동안 복용하면 선인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이처럼 도교에서 신선이 될 수 있는 효능이 있다고 믿었던 운모가 풍납토성 경당지구 9호 제사유구에서 대량으로 출토된 점은 한성시대 백제인들도 운모의 효능을 알고 이용하였음을 보여준다. 풍납토성에서 발견된 운모를 통해서 우리는 한성시대 백제인들의 도교문화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