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왕은 『涅槃經』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비천도 3년만인 재위 19년(541)에 양으로부터 열반 등의 경의를 수입하고 있는 장면은 이를 잘 말해준다. 아울러 釋迦佛信仰에도 관심을 갖고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성왕은 彌勒信仰도 함께 추구해, 귀족세력과의 조화 속에서 불교를 신앙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涅槃經』은 성왕이 사비천도 이후에 추진한 개혁 과정에서 사상적으로 뒷받침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성왕의 『涅槃經』에 대한 관심은 중국 남조, 특히 양무제의 『涅槃經』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살펴진다. 양무제는 『涅槃經』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戒律과 佛性論 모두와 관련이 있다. 또한 여기서의 계율은 효와 관련되어 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성왕이 강조하는 『涅槃經』의 계율은 정법의 호지와 관련이 있다. 여기서 정법은 곧 부처의 말씀이며, 석가와 관련이 있다. 석가불신앙은 왕권을 고양하는 신앙으로서 작용하고 있으며, 귀족세력과는 조화 속에서 전개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계는 위덕왕대에도 지속되고 있는데, 능산리 사원의 창왕명사리감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涅槃經』에서는 佛性도 강조한다. 그리고 일체중생에게 불성이 있음은 평등사상을 토대로 불교신앙의 확산을 가져온다고 본다. 신라의 원효가 아미타신앙을 강조함으로써 일반민에게 成佛可能性을 주지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佛性論과 관련이 있는 것이 그러하다. 불성론을 통해 불교가 확산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제의 경우도 불교확산의 과정에 있어서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