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삼국의 사서 편찬에 관한 사료들과 가존의 제설을 살펴보았다. 이 글에서는 사서 편찬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편찬 관련인물의 성향, 또는 삼국의 역사적 상황을 비교함으로써 그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였다.
기왕의 연구에서는 삼국의 사서가 왕실의 계보나 신화, 전설 등 주로 왕실의 전승을 위주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이것은 왕실의 전통성과 신성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당시 삼국사회를 ‘고대전제국가’ 내지는 ‘전제화된 왕권 중심의 고대국가’라고 보는 인식에 바탕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고대사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삼국시대의 정치․사회적 성격에 대해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라고 하는 주장이 보다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고대 삼국의 사서가 왕실의 입장만을 대변하던 것처럼 주장해오던 기존의 견해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삼국의 사서는 왕실의 권위를 존중하는 한편, 귀족의 입지와 역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편찬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삼국의 사서에는 왕실과 귀족의 전승이 함께 수록되었을 것인데, 아마도 왕실과 귀족의 시조전승, 건국과정과 국가의 발전과정, 그리고 대외정복활동 등에서 나타난 위대한 왕과 귀족들의 활약이 주를 이루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그럼으로써 삼국의 지배층은 지배권력의 기원과 그 정당성을 대내외에 과시하여 인정받으려 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삼국 사서 편찬의 진정한 가치는 국가의 제도가 정비되고 대외적인 발전을 할 무렵, 과거 구비전승이나 단편적인 기록들로 전해져 오던 것들을 하나의 체계로 문자화하여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삼국이 각기 자국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앞으로 자국이 지향해야 할 바를 제시하는 지표와 같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