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교역활동과 소금-
2. 소금의 비중과 그 생산
3. 백제국의 소금산지 확보와 그 통로
4. 소금공급과 내륙교역체계의 구축
5. 맺음말 –소금생산의 사회적 기능-
요약
소금은 인간 생활에 있어 그 생존 유지를 위한 필수 물품이다. 따라서 국가의 성장은 지배층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소금산지의 확보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데 백제국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 소금 생산은 토기제염법에 의한 것으로 해변 확보가 그 선결문제였다. 백제국은 정복의 방향을 서해 연안지역으로 돌려 소금공급의 최단거리인 인천지역을 그 영향권 내에 넣었다. 백제국은 인천의 소금산지를 확보한 후 이를 남,북한강 유역 세력에게 공급해주는 한편 그 댓가로 고대국가의 잠재적 국력의 척도인 철자원의 매입이 가능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백제국은 부존자원인 철재의 막대한 비축이 가능할 수 있었으므로 이를 토대로 농업생산력의 증대와 무력기반의 확대를 도모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이러한 교역활동을 통해 백제국은 이들 세력을 그 정치적 영향권 내에 묶어둘 수 있었다. 이는 곧 권력범위의 확대를 뜻하였으므로 백제국은 안산을 비롯한 서해 연안을 따라 서부지역을 장악해나가면서 소금산지를 독점적으로 개발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교통로 확보도 가능하였다.
그 결과 백제국은 기본적 생존자원인 소금 장악과 부산물인 서해 연안의 확보를 통해 노령산맥 이북의 마한제국이 개별적으로 누리던 대중국 교역창구의 독점까지 기할 수 있었던 바 지금의 겅기도 전역, 충청도 및 강원도 일부지역까지 비교적 용이하게 세력을 미칠 수 있었으리라 본다. 백제국의 소금루트는 해산물 공급까지 가능하였고 철자원을 비롯한 옥석류, 포, 미곡 등의 확보도 용이하여 그 세력확대 과정에 있어 매우 긴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백제국에 의한 독점적 소금생산은 국가규모의 조직적인 대량생산 체계의 확립과 그 분업화를 촉진시키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즉, 제염집단 외에 연료의 채취 및 제염토기 제작집단 등과 같은 분업화를 가능하게 하였을 것이며 나아가 이는 사회분화를 촉진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