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백제 국가 형성 문제 중에서 그 형성 연대를 정하는 것을 중요시하면서 문제를 토의하는 것으로 목적으로 한 것이다.
광복 이후에 비하면 오늘 한국의 역사 과학은 백제국가 기원문제 연구에서도 커다란 업적을 내놓았다 할 수 있다. 그중에 고고학의 광범위한 발전은 백제사에 관한 모든 문서사료의 확실성을 어느 정도 검토할 수 있게 했다. 문헌사료를 이용할 때, 국내사료와 국외사료를 옳게 비교해야 할 문제도 중요하다. 특히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사와 삼국지 동이전의 정보와의 모순을 적당히 해결하지 않으면 백제국가 형성 문제 해명이 어려울 것이다. 백제건국 문제를 마땅히 이해하려면 그 국가가 수립되던 시기의 사회경제적 일반 환경을 구명해야한다. 이 방면에서는 삼국지 동이전보다 귀중한 사료는 없다. 한반도에 존재한 나라들과 민족에 관한 자세한 정보가 실려있기 때문이다. 삼국지 동이전 한조 서술대상의 시기와 그 자료의 신빙성에 대한 회의와 논쟁도 잇지만 최근에 와서는 삼국지 한조가 기원전이 아닌 실로 3세기 사실을 반영하는 문헌이라는 확신이 논거되었다. 이는 고고학적으로도 증명된다. 문제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사이다. 이를 토대로 어떤 학자들은 고이왕대에 백제국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백제본기의 정보는 그 시대의 마한 제소국의 실태와는 전부 합의될 수 없다. 삼국지 동이전이 전하는 것과 백제본기의 기사와의 일치되지 않는 모순은 최근의 한국 사학계의 성과로 극복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먼저 백제본기 초기 기록에는 왕계와 기년뿐만 아니라 기사전반이 틀려진 것으로 보아 고이왕 27~28년 기록도 3세기에 속하는 것으로 믿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그 기록은 후대의 사실이 과거에 소급된 것으로 보는 것이 아주 합리적일 것이다.
또 백제국가 형성문제에 대한 해명은 전 동아 역사발전환경에 적합하게 함으로서도 좋은 근거를 얻을 수 있다. 그 중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백제국가 형성발전이 일본열도에서의 계급사회 발생과 국가제도의 정비를 촉진시켰다는 결론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