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紀 혹은 濟紀의 저본이 된 원사료는 백제의 왕계를 장자계승원칙에 입각하여 정리하였다. 濟紀에는 배장자, 곧 ‘二子’로 설명된 계승자는 예외없이 정변 내지 왕실교체의 주인공으로 상정되는 존재이다. 濟紀에 등장하는 ‘二子’를 한성시대에 한해 적출해보면 온조왕, 고이왕, 비류왕, 근초고왕, 진사왕 등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실력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요컨대 濟紀의 ‘二子’왕위계승은 정상적이지 않은 과정을 통해 즉위한 인물을 설명하는 한가지 방법으로 사용된 것이다.
한편 온조왕(1)~비류왕(11)까지 역대 왕들의 재위 및 생몰연대에 대한 濟紀의 설명은 여러모로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였다. 이에 대해 필자는 고이계를 온조-초고계와 분리시킨 다음 백제와 전혀 별개의 집단으로 설정하였다. 즉, 고이계는 삼국지의 우휴모탁국이나 신분고국 등 백제국의 서북방에 위치한 소국에 해당되는 집단이며 사기 제기에서는 말갈로 등장하는 세력 중 하나인 것이다. 위의 추정은 초고와 고이가 동시대 인물이며 구수와 책계. 사반·비류와 분서가 또한 같은 항렬이라는 데 착안한 것이고 이같은 해석에서는 고이와 비류의 재위 및 생몰년대의 불합리에 대한 해결책도 자연스럽게 찾아진다.
위의 추정대로라면 비류왕은 분서왕을 이어 즉위한 것이 아니라 사반왕 혹은 사반왕 아들을 대신한 것이 된다. 비류왕은 정변을 통해 백제국의 통수권자로 등장한 후 고이계를 흡수통합하였다. 백제국의 영역과 국력이 그만큼 확대된 것이다. 비류왕을 이어 즉위한 근초고왕은 왕실교체의 주인공으로 상정되는 인물이다. 모구검의 고구려 침구를 즈음하여 남하하기 시작한 고구려계는 한강 상류역 등에 일단 정착한 다음 서서히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갔다. 급기야 백제국을 정복한 근초고계는 국호를 백제로 변경하였다. 비류왕대부터 착실히 확장되어온 영역과 국력이 바탕되기도 했지만 왕실을 교대한 근초고계의 군사적 역량이 국가 발전의 촉진제가 되었으며 그 못지 않게 비류왕대에 통합된 고이계를 통해 한인 및 한문화를 충분히 내재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해 속에서 중국측 문헌과 대체로 일치하는 고이계에 대한 제기의 연대를 기준삼아 동렬로 처리된 초고계를 같은 시대로 상정하고 온조~개루까지는 그보다 앞선 시기로 비정할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