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수에서 당으로 왕조교체가 이루어졌고 황제권력의 확립을 위해 이민족을 포함한 변경에서 접근국가로의 팽창을 목표로 하였다. 한반도 삼국은 백제와 신라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이에 고구려가 깊숙이 개입하는 형태였다. 인접한 왜도 공통의 역사적 시련을 거쳤다. 이러한 국제환경하에 동아시아 제국은 계속해서 정변과 권력집중이 일어났다.
7세기 중엽 고구려 연개소문은 당을 비롯한 제국과의 국제관계를 계기로 강렬한 개성을 갖고 권력집중을 도모하여 대당항전을 추진하기 위한 임전체제를 갖추었다. 신라에서는 비담의 난이 일어났고 이를 김춘추와 김유신 등이 진압하였다. 이후 전개된 신라의 대외외교는 당을 중심으로 한 국제정치, 국제관계의 동향과 밀접하다. 또한 왜까지 포섭시키는 신라본위의 다원적 외교질서를 구축하였다. 동아시아의 변동은 인접한 왜에도 미쳤다. 대화개신은 왕권계승을 둘러싼 권력교체의 정쟁이나 이를 일으킨 국내적 여러 모순과 국제적 조건도 함께 생각할 수 있다.
백제의 정변은 외교정책과 밀접한 사건으로 백제가 신라를 침공하고, 고구려와 동맹하는 강경책은 당의 외압에 기인한 냉엄한 국제정세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었다. 국제적 계기를 받은 왕권 내부에서의 대처가 요로의 추방과 태자 교체로 표출된 것이다.
동아시아 제국 전체의 시야에서 보면 백제의 국제는 당의 제도를 수용하지 않는 독자성에 있어서 고구려와 유사하다.왜와 신라는 당풍화를 지향하였다. 7세기 중엽 한반도 와 일본은 국제적 계기를 대내적 개혁으로 전화시켰는데 각각의 대외정책이 독자적인 왕권이나 국가의 전개를 규정지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