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무령왕릉 묘지석의 내세관
1. 묘지에 반영된 繼世的 내세관
2. 매지권의 地下 他界觀
III. 方格規矩神獸文鏡의 명문을 통해서 본 도교적 내세관
IV. 사비천도 이후의 금석문에 반영된 불교적 내세관
V. 맺음말
요약
금석문을 통해서 본 백제인의 내세관은 시기에 따라서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내세인식을 볼 수 있는 금석문 가운데 제작․사용시기가 가장 빠른 것은 4세기 후반경에 유입된 무령왕릉 출토 방격규구신수문경이다. 이 거울에 담긴 소망은 불확실한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추구한 장생불사의 소망이었다. 523년에 제작된 무령왕릉의 지석으로부터는 백제의 장례가 27개월에 이르는 유례없는 장기간의 殯葬을 포함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백제인들의 계세적 내세관을 보여준다. 죽은 자의 영혼이 생전의 거택에서 머물러 있으면서 산 사람들과 같은 생활을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묘토를 지신으로부터 구입하기 위해 제작한 매지권의 내용에서는 수직적 타계관의 한 유형인 지하 타계관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지하의 묘실내부를 타계로 인식하는 내세인식이다.
사비천도 직후인 6세기 중반 무렵의 능산리 목간에는 죽음과 생이 밀접한 관련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끝없이 윤회한다고 하는 연기설과 불교적 윤회사상이 나타난다. 또 백제인들은 살아서 善因을 쌓지 못했던 경우에도 죽은 후 가족의 追善에 의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인식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생존해 있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인식과 함께 내세와 현세를 서로 소통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생사관의 모습을 갖게 된다. 윤회인식은 부흥운동기 백제 유민들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연기지역의 불비상에서도 발견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특히 백제부흥운동 시기를 맞으면서 호국불교적 성격이 가미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