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百濟王 豊에 관한 기사
Ⅲ. 百濟王 豊에 관한 《日本書紀》의 기사 검토
Ⅳ. 豊과 翹岐의 관계
Ⅴ. 맺음말
요약
백제왕 풍은 왕자의 신분으로 631년 무왕에 의해 대화왜에 파견되었다가 660년에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항복한 후 백제 저항세력에 의해 왕으로 옹립된 인물로서 663년 백강구에서 왜군을 이끌고 치는 나당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풍은 도주하고 그의 아들인 충승과 충지는 왜군과 함께 항복하였다. 이 풍에 대하여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관련 자료를 대비 검토하여 본 결과 《일본서기》는 적지 않은 왜곡과 운색을 하였던 것으로 보여지며 아직까지도 백제왕 풍의 역사적 성격에 대하여 올바른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서기》에는 풍이 질자로서 있다가 제명천황이 풍을 백제왕으로 임명한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제명천황은 복신의 지시에 의해 구주로 가서 백제 구원군과 무기를 준비하였고 풍은 이들 왜군을 이끌고 돌아와 나당연합군과 전쟁을 치루고 dLT으며, 대화왜에서 백제 관위가 사용된 점 등으로 보아 631년(흠명3)~661년까지 풍이 왕자의 신분으로 대화왜에 체류한 것은 당시 백제의 대화왜 통치를 위한 것이었으며 《일본서기》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쓰여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서기》는 교기와 풍을 다른 인물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여러 점으로 미루어 보아 양자는 동일 인물로 생각된다. 그리고, 백제는 종전의 통설처럼 660년 의자왕 시대에 멸망한 것이 아니라 663년 백강구 전쟁을 치룬 백제왕 풍의 시대에 멸망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재검토가 필요하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