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百濟本紀』에 나타나는 靺鞨의 세력 분포와 실체
1) '北有靺鞨'에 대하여
2) 백제 동쪽의 말갈
3) 백제 주변에 출몰하는 말갈의 실체
3. 靺鞨의 活動과 百濟의 對應
1) 백제의 건국과 말갈의 침입
- 溫祚 ~ 己婁期를 중심으로
2) 3세기 前半의 靺鞨의 침입 - 肖古~仇首期의 말갈
3) 古爾王의 등장과 靺鞨의 服屬
4. 결론
요약
『삼국사기』「백제본기」를 중심으로, 서기 1~3세기에 백제와 대립한 말갈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그들의 세력 분포와 활동 상황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지』의 嶺東 7縣․北溟․貊國․銅海谷․南新縣․廉斯邑․靺鞨 石門城 등 小國(지명)들과 酋長 素牟라는 지역 세력의 존재를 말갈과 결부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만, 이들이 「백제본기」의 말갈 세력의 일부라 하더라도 『삼국지』 濊傳에 전하는 것처럼 모든 말갈(=濊) 세력을 아우르는 통일적 권력이나 사회가 생성되지는 못한 듯하다. 그리하여 말갈은 한강 유역에 정착한 백제를 건국직후부터 끊임없이 괴롭혔으나, 서기 1세기 중엽 이후에 점점 백제의 적극 공세에 밀리다가 2세기 말에는 백제에게 屈服당하게 된 듯하다. 그러나 肖古王 45년(210) 이후에 말갈이 다시 백제를 침공하는데, 이는 中國 郡縣의 분열 정책 탓이었다. 고이왕 25년(258)에 말갈이 사신을 보내오고, 백제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화친 관계가 성립되는데, 이는 백제가 政始 년간(240~248)에 중국 魏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아낸 결과 나타난 현상이었다. 말갈은 강력해진 백제와 계속 대치하는 것이 불리하다는 판단과 함께, 중국 郡縣의 과도한 요구와 침탈에서 벗어나고자 마침내 친 백제로 돌아섰던 것이며, 백제도 중국 군현․마한 등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이를 적극 받아 들였던 것이다. 「백제본기」에 고이왕 25년 이후 130여 년 동안 말갈 관련 기사가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뒤로 백제가 점점 말갈을 확고하게 복속시켜 간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백제는 서기 3세기에 한반도 중부지방을 아우르는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