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의 목적은 능산리 사원의 제의적 성격을 고찰하는데 있다. 능산리 사원은 위덕왕에 의해 창건되었다. 위덕왕은 성왕의 사후에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귀족세력과 타협이 이루어지게 되고, 그 결과로 능산리 사원이 창건되게 된다.
능산리 사원은 사찰로서 기능하기 이전부터 제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사원지역에 존재하고 있었던 강당지가 성왕대에 이미 제의적 성격을 가지는 건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지는 성왕대에 제의체계가 정비되어 가는 과정에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성왕은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하면서 제의체계를 정비하였다. 이 과정에서 오제신앙을 수용하는 등 하늘에 대한 제의를 새롭게 정립하였다. 오제신앙의 오제는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조상신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백제에서 오제신은 하늘과 같이 제사되었다. 이는 성왕이 조상의 출계를 하늘에 두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왕은 이와 함께 능산리에 자신의 수릉과 제사 공간을 건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계획은 성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하여 완성을 보지 못한다. 이를 이어 위덕왕은 이 지역을 사찰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위덕왕은 이 사찰을 성왕에 대한 원찰로서의 기능만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지역은 본래 능산리 묘역에 대한 제의를 담당하던 곳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수릉과 제의적인 건물이 이미 들어섰던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사원의 건립이후에도 보인다. 성왕의 공주인 매형공주가 제의를 담당하고 있는 것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매형공주는 성왕의 맏공주로서 해석되는 것 보다는 兄(口밑에兀)이 가지는 제의적인 성격과 연결된다.
위덕왕의 능산리사원 창건은 유교적인 하늘을 통해 왕권의 정통성을 찾고자 하였던 것과는 달리 이제 불교를 통해 왕권의 정통성을 세우고자 하는 목적이 담겨있다. 「창왕명석조사리감」의 명문에서 알 수 있듯이 사리를 봉안하는 의식은 신성성의 고양을 통한 왕권의 정통성을 석가불=불사리에서 찾고자 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天命을 받은 성왕이 非命함으로써 유교적인 명문이 많이 희석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