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한국 고대의 천신
3. 고조선의 제천의례
4.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보이는 제천의례
5. 삼국시대의 제천의례
요약
한국 고대의 제천의례로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 내용이나 기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나아가 그 특징을 연희적 측면과 관련하여 언급해보고자 하였다.
한국에서의 제천의 전통은 고조선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신화와 의례가 같은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으면서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고조선 당시 단군신화를 재연하는 의례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조선 제천의례의 존재는 추론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비해, 한국에서 제천의례가 거행되었음을 알려주는 가장 오래된 자료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다. 이러한 기록들에 따르면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이 그것이며, 마한에서도 고유의 이름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제천의례는 축제형 의례로 유교나 도교의 제천의례와 구별되는 우리 고유 제천의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제천에는 거행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정기위례와, 유사시나 특별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치러지는 임시의례가 있었다. 그러나 같은 정기의례라 하더라도 시기는 사회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부여의 영고는 은정월에 거행되어 신년제적 성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며, 고구려의 동맹과 동예의 무천은 음력 10월로 지금까지 추수감사제라는 해석이 많았으나 음력 10월은 추수가 끝나고 상당기간이 지난 시점이다. 고구려의 동맹제는 고구려의 건국과 관련한 의미를 지니는 시기가 아닌가 추정하며, 동예 무천의 성격에 대해서는 자료의 부족으로 천착할 길이 없는 것이 아쉽다. 제천의례의 규모와 관련해서는 사회발전단계와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규모에 따라서 제천의례는 왕권강화의 지표가 되며 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삼국시대에도 제천의례의 전통은 계속되었다. 고구려는 동맹 이외에도 3월 3일을 기하여 낙랑언덕에서 사냥대회를 하고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냈음을 알 수 있고, 백제 제천의 경우 중국 유교의 제천의례를 받아들였지만 그것과는 일정한 차이를 보이며 거행하였다. 신라는 천에 대한 제사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불교를 수용하면서 불타가 천신을 능가하게 됨에 따라 천신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실추되면서 제천의 전통은 점차 약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