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을 대체로 인정하며 백제의 국가 형성과 통치체제의 편성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그 결과 백제의 모체가 되었던 십제는 기원전 2세기말에서 기원전 1세기초에 이르는 기간에 부여계 고구려 이주민세력인 온조집단에 의하여 위례성을 정치 중심구역으로 하여 소국을 형성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십제는 곧 이어 부여계 고구려 이주민들에 의하여 형성되었던 미추홀소국을 통합하게 되었다. 십제가 소국을 형성할 때 한반도 남부에는 소국연맹이 형성되어 있었다. 십제는 마한의 한 소국으로 자리잡았다. 그 후 미추홀소국을 병합하여 국력이 커진 백제는 이웃한 마한 소국들을 병합하여 나가게 되었다. 기원후 1세기 전반경에는 경기도 남쪽지역에 있는 마한의 맹주국을 멸하고 그 영역을 경기도 일원으로 확장시켰다. 그 이후 1세기 후반에서 2세기에 걸친 기간에는 충청도 일대의 마한 소국들을 점차 병합하여 나갔다고 헤아려 보았다. 한편 기원전 1세기의 백제는 낙랑과 원거리교역, 전쟁관계를 가졌는데, 기원후 1세기 전반경부터는 낙랑과의 원거리교역의 방식이 변하였고, 낙랑의 군사적인 힘이 변동되어 백제와의 군사적인 충돌이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백제는 소국단계를 거쳐 소국 병합단계로 발전하며 통치체제를 발전시켜 나갔다. 특히 고이왕의 정치적인 개혁은 백제의 영역 확장과 인구 증가에 따른 필연적인 조치였다고 생각된다. 고이왕은 전부터 편제되어 온 관직과 관등을 정비하고 신분제도를 분명히 하였는데 그와 같은 일련의 정치 개혁은 백제 왕국이 율령체제를 받아들인 결과라고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