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왕인에 관한 기록의 시원
III. 왕인의 '영암 출생설' 등장
IV. 왕인의 '지역 영웅화'와 유적지 조성
V. 맺음말 - '지역 영웅화'의 시기적 특징과 전망
요약
영암을 중심으로 한 여러 단체와 학자들이 ‘영암 출생설’과 ‘유적지 존재설’을 주장하면서 왕인을 ‘영웅화’해 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소위 강단 사학자들은 거의 이 작업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일방적 담론 형성은 왕인의 ‘지역 영웅화’ 유적지 조성 사업을 대략 네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첫 번째 시기는 1930~40년대인데, 이때에는 주로 일본인에 의해 왕인의 ‘영암 출생설’이 제기되었다. 두 번째 시기는 1970년대인데, 이 무렵에는 왕인의 ‘영암 출생설’이 보다 구체화되었고, 왕인과 관련된 유적지 조사가 이루어졌다. 세 번째 시기는 1980년대라 할 수 있는데, 이 당시에는 왕인 사당을 비롯한 유적지 조성사업이 마무리되었다. 네 번째 시기는 1990년대인데, 이때부터 소위 ‘왕인문화축제’가 개최되었다. 이는 지방자치 시대의 전개와 맞물려 있는 새로운 변화로 추정된다. 이러한 네 차례의 걸친 주요한 정책상의 이유 때문에, 왕인의 ‘영암 출생설’과 ‘영웅화’ 작업은 별다른 비판이나 문제점 제기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영암군 군서면 일대에 거창하게 세워진 왕인사당과 잘 조성·정화된 왕인 유적지에 대한 절대적 문헌자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후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왕인의 ‘영암 출생설’과 ‘영웅화’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과 보완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