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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왜의 정치, 외교적 관계고찰을 통해 본 새로운 역사인식의 자세(百濟와 倭의 政治, 外交的 關係考察을 통해 본 새로운 歷史認識의 姿勢)

  • 분류 문헌 > 기타
  • 권호수 제3권 27호
  • 저자 유불란
  • 발행일 2001년 12월
  • 게재지 역사와 사회
  • 발행처 국제문화학회

목차

* 목차 없음

요약

百濟一倭의 관계는 크게 다음의 네 개의 시기로 요약해볼 수 있다. 제1기는 辰斯王에서 東城王에 이르는 시기로 이는 1세기에 걸친 고구려의 전면적인 압박으로 특징 지워진다. 이때 신라는 고구려의 통제 하에 놓여 있었고 중국은 분열 상태에 있었기에 오직 倭만이 유일한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였다. 다음으로 제2기는 무령왕과 성왕의 치세기로 백제가 다시 국력을 회복하여 고구려에 대한 역공에 나선 시기였다. 공세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백제의 내정이 안정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교적으로도 신라 및 가야와 더불어 왜와의 긴밀한 동맹을 구축한 데 있었다고 여겨진다. 제3기는 성왕의 전사를 기점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여 대외적으로 중국과 왜에 대한 외교적 접근에 치중한 시기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지금까지 분열된 상황 때문에 상징적인 위치에 국한되었던 중국이 수․당의 통일제국이 등장하여 삼국에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기존의 동맹관계가 재편되는 양상을 보였다. 결국 제 4기의 義慈王의 治世에 접어들면 백제는 고구려와의 공조를 분명히 하여 唐一新羅 축에 대항하게 된다. 이 때 倭는 처음에는 특별히 한 축에 가담하지 않고 등거리외교를 펼쳐 중립적인 성향을 견지하였으나 唐一新羅 측의 명확한 입장표명 요구의 압박을 계기로 결국 기존의 친백제정책으로 회귀하게 된다. 백제와 왜의 정치․외교적 관계에 대한 해석의 문제는 이른바 민족주의적 가치관에서 사회 제영역이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이는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가 영향력을 미치는 한 언제나 모든 것의 결론은 이미 정해진 상태, 곧 우리 민족의 독자성과 남다른 우수성을 위해 현상이 裁斷되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는 단지 당대의 상황이 그러한 상태였다는 것일 뿐 현재와의 직접적 인과관계는 결코 성립하지 않고, 오히려 있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러한 자세야말로 현 상황에서의 후진성을 가장 명백히 보이는 바라 여겨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정치사상을 정립하는데 가장 우선해야 할 바로 이러한 정치사상을 추출해 낼 역사 속의 정치적 사건들에 대해 특정한 틀을 우선하지 않고 가능한 본래의 맥락을 밝히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일단 이러한 해석의 대상이 객관적으로 정립되었을 때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시도는 ‘왜곡’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의미 지울 수 있게 될 것이라 여겨진다. (연구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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