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일본에 있어서의 동경의 의미
III. 선행연구자들의 諸說
IV. 명문의 주요 논점에 관한 신 고찰
V. 맺음말
요약
우전팔번경은 비교적 이른 1834년에 발견되었지만, 1914년 타카하시 켄지의 초기 판독과 1934년 후쿠야마 토시오의 全文 판독에 의해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6세기초의 백제와 왜국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선입견을 가지고 연구에 임하는 관계로, 보다 양심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銅鏡이 일본에서 발견됐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주로 일본인 학자들이 연구를 진행 해 왔다. 그러나 이 동경의 명문은 일본사의 범위를 넘어 동 아시아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져야 올바른 시대상의 복원이 가능하다. 「開中」이 야마오 유키히사(山尾幸久)씨의 주장처럼 「□中」으로 판독되어, 이는 전라도 지방으로, 벽제라 보지만, 이는 논거가 부족하다. 또한 와다 아츠무(和田萃)씨의 주장처럼 「斯麻가 키타셋쯔(北攝津)의 미시마(三嶋) 이다」라는 주장이 인정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문의 주요 내용인 「癸未年」의 연대 확정으로부터 동경을 받은 「男弟王」의 규명은 물론 동경을 만들게 한 주체로서의 「斯麻」, 그리고 사마왕의 명령으로 鏡을 만든 「開中費直穢人今州利」 등의 올바른 해석이 중요한 관건으로 떠올랐다. 필자는 이러한 현재까지의 연구 상황을 참작하여, 우선 여러 설을 객관적 입장에서 정리 한 다음, 「日十六王」이 사마 왕이자 무녕왕임을 논증함으로써, 이 부분을 일부 선행 연구가들이 「日十大王」으로 판독함은 잘못이며, 따라서 대왕=일본천황 설은 성립 될 수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선행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명문의 올바른 해석을 시도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