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백제 건국 시조에 관한 전승
Ⅲ. 始祖王에 대한 天子로서의 位相 附與
Ⅳ. 國都의 選定과 국토의 劃定
Ⅴ. 온조왕의 아버지
Ⅵ. 맺음말
요약
삼국사기에 전하는 온조왕상을 통해 그 사실 여부를 구명하는 일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온조기에는 권위가 막중한 시조왕을 통한 왕실에서 전달하려는 일련의 정치적 메시지가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시조왕이 건국하기까지의 고난스러운 이동과 정치적 용단에 의한 국가 터전인 국도의 올바른 선택, 그리고 영웅적인 분투로써 외침을 막고 국토를 크게 개척하여 현재의 백제 영역을 물려준 정복군주로서의 이미지가 부각되어 있다. 즉, 북으로는 예성강, 동으로는 춘천, 남으로는 금강을 넘어 노령산맥에 이르는 드넒은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적혀있다. 그러나 기실 이는 근초고왕대에 이룩한 영역을 시조인 온조왕대의 업적으로 투영시킨 것에나 다름아니다. 이는 곧 근초고왕계와 구분되는 온조계 왕실의 역사적 승리의 반영이자 그 산물이라고 하겠다.
삼국사기 온조왕기는 국가의 창건과 영역확장에 있어서 온조왕의 명철한 판단과 빼어난 군사적 능력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생민을 책임지는 농경군주로서의 며모와 더불어 민과 친근한 자애로운 덕주군주로서의 면면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온조왕기를 관류하는 흡사 서사시적인 서술은 남옥저인들의 귀순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그 자체가 번성과 부강함을 상징하고 있는 온조왕 위업에 대한 일종의 귀결점이 된다. 이러한 삼국사기 온조왕기는 최종 승자인 온조계 왕실의 입장에서 또 당시의 정치적 현안과 결부되어 작성되었다. 요컨대 삼국사기에 서술된 온조왕상은 이런 각도에서 접근하는 게 온당할 것 같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