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대통사 관련자료의 검토
1. 『삼국유사』
2. 대통명 기와와 대통교
III. 대통과 대통사
IV. 대통사의 창건연대와 창건목적
V. 맺음말
요약
대통사에 대한 문제제기는 『삼국유사』의 대통사에 관한 기록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촉발되었다. 대통사의 창건주체, 창건장소, 창건연대, 창건목적을 정확히 기술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과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백제 웅진의 대통사를 「원종흥법염촉멸신」이란 법흥왕의 흥법과 이차돈의 순교를 다루는 부분에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창건주체를 법흥왕이라 하면서 창건 장소가 백제의 웅진[공주]인 것이 문제가 되고, 창건 장소가 백제의 웅진이라면 창건주체가 법흥왕인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료비판을 거치지 않고 단지 신라의 법흥왕을 백제 성왕으로 바꾸어 이해하여 왔다. 웅진에서 발견된 대통명 기와의 경우 연대를 표기하지 않은 연호가 기와에 새겨진 사례가 없는데 이를 가볍게 연호로 취급해 왔다. 그래서 대통사는 백제 성왕이 대통원년 양나라 무제를 위해서 지은 사찰로 지금까지 알려져 왔다.
대통사의 위치에 대해서는 대통사지로 추정되는 곳을 발굴한 결과 당시의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새로운 검토가 필요하다. 제민천의 대통교가 18세기 후반의 『호서읍지』에 보이고 있으므로 대통교 건너편이 대통사의 중문일 가능성을 제기해 보았다.
『삼국유사』에서 대통사의 창건주체를 법흥왕으로 보고 창건 장소인 웅진이 당시 백제의 도읍이었음에도 신라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삼국유사』 찬자의 대통사에 대한 정보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사실 대통사의 창건연대는 대통을 통해서 알수 있고, 창건 목적도 대통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삼국유사』는 단지 웅천주에 대통사가 있다는 정보밖에 갖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대통사의 대통의 의미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법화경』 화성유품에 의하면 전륜성왕-대통불[위덕세존]-법왕/지적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설해져 있다. 이러한 계보는 백제의 성왕, 대통사, 위덕왕, 법왕, 사택지적의 용례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백제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성왕은 대통사를 통해 전륜성왕에서 법왕에 이르는 불국토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성왕의 의지는 후세 왕들에게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대통불을 모시기 위해 525년을 전후하여(523~529) 창건된 대통사는 이후 양무제의 대통연호가 알려지면서 양무제와 관련을 맺다가 이후 대통불의 대통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양무제의 대통만 남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