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建康城 定林寺의 명칭과 역사적 연혁
3. 魏晉南北朝時期 불사건축의 특징과 시대적 변용
4. 南京 上定林寺址에 대한 검토 및 백제와의 관련성
5. 맺음말
요약
최근 신출한 중국 방면의 고고자료를 바탕으로 기존의 관련문헌을 정합하여 부여 정림사 사명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淺析하였다. 정림사 사명의 유래에 대해서 여러 견해가 존재하지만, 필자는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백제와 남조정권의 관계 및 교섭의 틀이라는 사실관계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역사적 개연성을 다시 한 번 환기함으로써, 정림사 사명의 유래에 대한 토론을 좀 더 구체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글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문헌과 고고자료에서도 이미 밝혀졌듯이 백제는 양에 대해 수차례에 걸친 견사를 행했고 또 당시 남조문화의 시류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의 사실도 확인되고 있어, 남조 京師의 정림사가 바로 부여 정림사의 모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건강성의 정림사는 단순한 불사의 의미를 넘어선 국가의 종합적인 씽크 탱크로서의 입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문화의 정수가 집결되고 교왕된 장소였다. 이를 감안한다면 백제의 입장에서 본국에서의 이러한 불사의 구현을 갈망했을 것이며 이를 위해 외교적 총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백제의 국운을 佛力에 기탁하여 정치․군사적인 면에서 다시 주도적 위치를 회복하기 위한 백제 왕실의 의도도 깔려 있을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