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 6세기후반 玄光의 활동과 미륵출현 희구의식의 등장
2. 7세기초 慧均의 『彌勒經遊意』와 三論學的 미륵사상
3. 武王代의 미륵사상과 益山 경영
맺음말
요약
백제의 미륵신앙은 불교 수용 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특히 570년경에 강렬한 미륵신앙을 가지고 있던 慧思의 미륵신앙이 수용되면서 더욱 활발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혜사의 미륵신앙을 전래한 玄光이 수행하였던 공주 지역의 경우 미륵신앙의 중심지로서 신라 불교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후 7세기 삼론학이 수용되면서 慧均의 『彌勒經遊意』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륵신앙을 삼론학의 입장에서 철학적으로 이해하려는 흐름이 나타났는데, 이러한 흐름은 삼론학과 미륵신앙의 결합이라는 백제의 독특한 미륵사상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발전된 백제의 미륵사상은 무왕대에 이르러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하에 더욱 발전하여 백제 불교를 대표하는 흐름으로 나타나는데, 혜사의 金字 『반야경』을 모델로 한 금속제 『금강반야경』의 제작과 미륵사 창건은 그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금속제 『금강반야경』을 봉안하고 미륵사를 창건하였던 익산 지역은 미륵이 출현할 지역으로 상정되었고, 태자의 이름은 미륵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 익산을 백제의 미륵 중심지로 만들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백제의 미륵신앙은 6세기 후반 이후 불교계의 주요 사상으로 대두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불교계의 사상적 발전에 부응하여 교리적인 내용도 갖추어 가게 되었다. 또한 백제 왕실은 이러한 미륵사상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한편 미륵사상에 입각하여 왕권의 정당화와 신성화를 시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륵사를 비롯하여 益山 지역에 나타나는 여러 불교 유적, 유물들은 그러한 백제말 왕권에 의한 미륵신앙의 수용과 활용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