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웅진시기 불교는 무령왕대에 이미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령왕릉에 나타난 모습 뿐만 아니라, 발정의 유학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양과의 교류 속에서 불교가 심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으로 본다. 그것은 무령왕 재위 21년인 521년 11월에 양에 사신을 파견하고, 12월에 영동대장군으로 책봉되는 과정에서 동태사의 창건을 지켜보았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동태사는 대통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爲梁帝創寺”란 표현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양무제가 동태사를 창건하면서 전륜성왕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양나라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널리 알리고자 하였던 것에서 살펴볼 수 있다. 대통사는 이러한 과정에서 창건된 것이다.
대통사가 창건되던 당시 백제는 사비로의 천도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성왕은 귀족세력에 대한 강한 왕권을 보여줄 필요성을 느꼈을 것으로 본다. 귀족세력의 입장에서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를 상실하는 것으로 반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성왕은 당시 성행하던 미륵신앙과 더불어 전륜성왕을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륵신앙에는 미륵불이 하생하여 득도하는 과정에서 전륜성왕의 예방을 받는 장면이 보인다. 즉 미륵신앙은 전륜성왕과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왕은 미륵신앙과 전륜성왕을 연결시킴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사비천도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웅진지역을 불국토의 중심으로 상정함으로써 천도로 인한 정치․문화적 공백을 최소화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