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론은 『삼국사기』본기의 기사 선정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였는가 하는 문제 다시 말해 그 범례를 추구한 것이다. 먼저 신라본기에 재상 임명 기사가 상당히 자세함에 주목하였다. 이는 찬자가 관련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재상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그 임명 기사를 실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백제본기와 고구려본기의 재상 임명 기사는 신라본기에 비해서는 그 자세함이 떨어졌다. 이는 관련 자료의 불비에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백제본기와 고구려본기의 찬자들 역시 각 국의 재상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에 그들도 재상의 임명기사를 될 수 있는 한 수록하려고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려국사』의 범례 중 재상의 직임이 중하기 때문에 그 임명을 될 수 있는 한 기록하였다는 항목이 있다. 이에 비추어 『삼국사기』 본기에 재상임명 기사도 이와 같은 방침 곧 범례에 따라 수록되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삼국사기』 본기에는 천재지변 기사가 적지 않게 수록되어 있다. 찬자들은 이를 천견으로 보았다. 재이와 홍수 가뭄을 모두 적어 천견을 삼갔다는 『고려국사』의 범례에 비추어 『삼국사기』찬자들도 같은 범례에 입각해 그것들을 수록하였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본기에 수록된 조공 등 중국관계 기사는 삼국의 중국에 대한 사대를 드러낸다는 범례에 따라 수록되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나아가 『고려국사』 범례 대부분이 『삼국사기』 본기의 일부 기사가 수록된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이처럼 『고려국사』의 범례를 통해 『삼국사기』 본기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두 사서가 비슷한 현실인식에서 편찬되었음을 시사한다. 본기의 기사는 대외적으로 중국에 대한 사대 준수, 대내적으로는 귀족 중심 사회의 유지라는 김부식과 그와 정치적 입장을 같이하는 12세기 고려 문벌귀족들의 정치적 지향을 반영하여 선정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본기와 열전에 실려 있는 총 31조목의 사론 중에는 김부식의 정치적 역정을 직접 반영하는 것들이 많지만 이에 비해 본기의 기사 선정은 당시 문벌귀족들의 일반적인 정치 이념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고 여겼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