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4세기 정체체제의 변동
1. 왕권강화의 추이
2. 近肖古王代 신진세력의 등장
III. 5세기 왕권중심 정체체제의 확립
1. 전지왕대 上佐平의 설치와 정치세력 변동
2. 蓋齒王代 왕권중심의 정체체제 확립
IV. 맺음말
요약
본고는 백제의 초기 정치체제의 기본구조를 部體制에서 집권적 지배체제로의 이행이란 측면에서 검토해 보았다. 고이왕대를 전후한 시기에 나타난 부체제의 변화 및 해체는 近肖古王․近仇首王의 집권체제의 정비에 따라 더욱 가속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초고왕대에는 정복전쟁의 수행과 영역의 확대과정에서 왕권의 물적 기반이 확대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한편으로는 이전과는 달리 전쟁에서의 공훈 등을 기반으로 새로이 등장하고 있는 정치세력들이 새로운 편제원리를 요구하였을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근초고왕․근구수왕대의 이러한 상황은 신진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능케 하고 있다. 신진 정치세력의 등장과 더불어, 기존 정치세력들에 대한 재편을 통해서도 왕권강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완비된 것이 아니었다. 5세기 초엽의 정국은 근초고왕대의 왕권강화가 제도적 차원이 아니라, 왕의 근신세력과 유력한 귀족가문의 연결 속에서 추구되었던 한계가 노출되었다. 여기에 고구려의 남하라는 대외적 요인에 의해 혼미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혼돈 속에서 즉위한 전지왕은 이를 수습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상좌평의 설치이다. 상좌평의 설치로 상징되고 있던 왕권중심의 정치체제의 확립은 蓋鹵王代에 취해지고 있던 정책들에 의해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것은 왕족중심의 정책과 王․候號制 및 이데올로기적 변화이다. 특히 왕권강화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사상적 기반으로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것은 「百濟本紀」에 나타나고 있는 道琳에 대한 기사의 적극적인 해석과 함께, 『日本書紀』「欽明記」16年 기사를 통해 뒷받침된다. 또한 상좌평 설치 이후 백제왕실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卽位儀禮의 일환이었던 東明廟親祀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근초고왕․근구수왕대에 토대를 놓은 집권적 지배체제는 진지왕의 상좌평 설치를 거쳐, 개로왕대에 왕권중심의 정치체제로 확립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귀족세력의 이탈로 인한 내부균열과 고구려의 대대적인 백제공격이라고 하는 외부적 압력으로 인한 개로왕의 전사는 왕권중심의 정치체제를 무너뜨렸으며, 이로 말미암아 백제는 웅진천도라고 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