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도론
Ⅱ. 《일본서기》垂仁紀 순장 기사의 분석
Ⅲ. 한국 고대 사회에서의 순장
Ⅳ. 순장 금지 이후 계세사상의 실현 양상
Ⅴ. 백제에서의 계세사상과 순장 : 맺음말에 대신하여
요약
순장은 繼世사상이라는 내세적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사람의 犧牲" 이라는 방식으로 행해진 祭儀의 일종이다. 고고학적 발굴 조사에 의해 신라, 가야 지역에서는 순장묘가 많이 확인되었다. 순장자의 수는 많을 경우 100명을 넘었으며, 고고발굴 자료에서도 수십명의 순장자가 확인되고 있다. 순장자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었고, 신분적으로 노비도 있고, 近臣도 포함되었다.
순장은 國都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행해졌다. 순장은 국가발전단계와 연관시켜 볼 때 집권력이 강화되고 사회분화가 진전된 部體制 단계에 와서 행해졌다. 부체제는 고구려의 경우 태조왕대에, 백제는 고이왕대에, 신라는 나물왕대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삼국의 순장제도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순장이 폐지된 시기는 고구려의 경우 4세기 전반경에, 신라, 가야의 경우 5세기말 내지 6세기 초이다. 그러나 이 순장제는 중앙 및 지방 귀족들의 人的 基盤을 해체하기 위한 왕의 의도, 농업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노동력 가치에 대한 인식의 변화, 유학사상의 수용에 따른 인간 생명에 대해 새로운 인식의 대두 등에 의해 폐지되었다.
순장폐지 이후 계세사상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였다. 고구려의 경우 주인공의 생시의 생활 모습과 시중을 받는 모습 등을 담은 생활풍속도를 그렸다. 신라의 경우 土俑을 埋納하거나 積石木槨墓 石槨오관묘를 배장하기도 하였다. 왜의 경우 人形, 馬形, 家形 등 다양한 형상 식륜을 순장대용물로 매납하였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