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 아이부인의 행적과 불교
2. 팔수부인의 출자
3. 내법좌평의 내법
4. 팔수부인과 내법좌평 해수의 행적과 불교
맺음말
요약
침류왕의 어머니로 기록된 아이부인은 근구수의 태자비 시절 불교에 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침류왕대 불교수용, 절의 창건, 10인의 도승에는 아이부인의 역할이 컸으며 그녀에 의해 비롯된 왕실의 여성 불교는 아신왕의 태자비로 들어간 팔수부인으로 계승되었다. 아신왕이 즉위하면서 발표한 "숭신불법구복"이란 교서는 침류왕때 불교에 적극적이었던 아이부인과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 및 새로 승려가 된 10인의 승려뿐 아니라 뒤에 왕비와 내법좌평을 배출했던 해씨가 공동으로 건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칠지도는 종래 369년 제작으로 알려졌지만 11월 16일 병오란 판독과 월일간지의 일치를 중시하면 전지왕 4년(408)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칠지도는 팔수부인의 아들 구이신이 태자가 된 것을 기념하여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칠지도에 보이는 "성음(聖音)"은 이러한 왕실의 번영을 가져다 준 부처에 대한 외경의 표현이다.
내법좌평의 내법은 『구당서』에 따라 예의와 관련을 맺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내법이나 법자가 들어간 관서나 관직 중에 예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관서가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관직 중에 사법(司法), 사례(司禮), 사의(司儀) 등이 있는 것 보면 사법의 법이 예법을 맡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내법이란 글자가 들어간 관서나 관직은 있지도 않았다. 침류왕때 불법이 비롯되었고 아신왕때 불법을 믿으라는 교서를 내린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새로 설치된 내법좌평의 내법은 불교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사실 내법이 관용적으로 불법을 의미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백제의 내법좌평은 처음 종교[불교]와 대외업무를 위주로 맡다가 후대에는 예의 일반으로까지 확대되어 『구당서』에 "장예의사(掌禮儀事)"로 실리게 되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