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성왕 때의 패수
III. 혈성·오곡과 왕봉·달을성현
IV. 두개의 우산성
V. 독산성과 마진성
VI. 맺음말
요약
『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성왕의 북진(551) 이전부터 한강 유역과 관련된 여러 지명들이 나타나는 바, 성왕 즉위년(523)의 '패수(예성강)', 성왕 7년(529)의 혈성(강화도)과 왕봉현 · 달을성현(경기도 고양), 성왕 18년(540)의 우산성(황해도 금천군 우봉면), 성왕 26년(548)의 독산성(경기도 포천) 등 한강 유역 일대를 둘러싸고 백제와 고구려가 공방을 벌인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이들 지역의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 시켜줌과 동시에 성왕 초기에 이미 한강 이북 지역을 백제가 점유하였던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성왕(523~554) 시기의 북방 영역은 전대인 동성왕(479~501)~무령왕(501~523) 시기보다도 오히려 후퇴한 모습을 보인다. 왜냐하면 이 시기 고구려가 혈성과 왕봉 · 달을성현을 빼앗고, 독상선을 공격하는 등 한강 이북 지역에 근접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가 패수나 오곡(황해도 서흥) 등 한강 이북을 넘어 공격한 것은, 백제의 고구려 공격이 한강 넘어 상당히 깊게 진행되었음을 뜻하며, 달리 표현하면 백제와 고구려의 경계선이 예성강 이남~한강 이북 사이에서 유동적으로 유지되었음을 뜻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