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百濟 滅亡 原因에 關한 諸見解
1. 前近代 史書의 見解
2. 近代 以後의 見解
III . 百濟滅亡의 原因에 關한 丁若鏞의 見解
1. 初期의 見解
2. 中期 以後의 見解
IV. 맺음말
요약
백제 멸망의 원인에 대한 논의는 『삼국사기』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김부식은 유교 도덕론의 입장에서 백제가 멸망한 원인을 백제의 도덕적 퇴폐에서 찾았다. 이것은 유가의 전통적인 설명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도덕주의적 설명은 이후 우리의 전근대 역사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이 영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근대 이후에는 도덕주의적 설명에 더하여 국제정세와 같은 객관적 형세도 고려하는 진전된 모습도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도덕주의적 비난의 강도가 매우 거셈을 우리는 손진태․이병도․이호영이 논저를 통해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역사의 인과관계에 대한 과학적․합리적 설명은 도덕주의적 관점을 벗어나야 한다. 또 사료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형성된 맥락을 보고 비판할 필요도 있다. 김부식은 유학자인 동시에 신라 계통의 고려 귀족이다. 그의 『삼국사기』는 신라라는 승리자의 입장에서 신라의 백제와 고구려 정복을 정당화한 역사서이다. 따라서 『삼국사기』는 유교의 도덕주의적 입장에서 신라의 백제 정복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백제의 군주, 특히 말기의 군주들에 대하여는 유교 도덕의 입장에서 하자가 있는 사람이라고 분식할 필요가 있었다. 백제가 사치․향락에 빠졌다는 후진 신라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으나 이것은 백제의 문화적 우위와 보다 큰 생산력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이제까지 백제 연구에서의 통설은 웅진 천도 이후 백제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하고 있으나 오히려 이 시기 이후 호남에서의 적극적 농업개발 및 해상교역의 증대라는 각도에서 보면 백제는 쇠퇴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백제의 멸망 원인에서 정약용은 일체의 도덕적 설명을 배제하였다. 백제의 지리적 이점(물산의 풍부)과 단점(방어의 어려움)이 복합되어 백제가 멸망한 것으로 보았다. 다만 정약용은 국제정세에 대한 분석은 시도하지 않았다. 지리적 요인이라는 내적 분서고가 외교의 실패라는 대외적 요인을 결합하여 설명하는 것이 백제 멸망의원인에 대한 보다 합리적 규명일 것이다. 또 이런 분석 태도가 진정으루 우리로 하여금 역사에서 참된 교훈을 얻게 하는 자세일 것이라고 판단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