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목간기록 "숙세결업(宿世結業)…"에 대해서 문학연구자로서 이 기록이 과연 시가인가, 시가라면 어떤 종류의 노래인가, 노래를 형성하게 된 시대적 배경과 그 성격을 갖는 문학사적 전통은 무엇인가에 대해 규명하였다. 이를 위해 원문의 각 구절을 하나씩 해석하며 해독하였다. 그 결과 이 자료는 백제 사람이 백제어로 부른 노래를 한역한 시가로 볼 수 있었다. 시적화자가, 사랑하는 상대의 죽음을 당하여 장례의 절차를 좇아 자신의 소회를 풀어낸 내용으로 이해되며, 먼저 같은 곳에서 태어난 인연이 전세에 맺은 업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 후, 절차를 갖추어 죽음이라는 사건을 수습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예를 갖추는 발원의식을 담은 노래이다. 즉, 작품의 중심이 되는 망자 혹은 화자 스스로를 향한 염원은 ‘발원의식’이라는 주제의식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여기서 ‘숙세’나 ‘결업’, ‘동생’, ‘일처’ 등 용어의 어원 때문에 불교적인 연상에만 구애될 필요는 없다. 백제사회는 불교와 유교가 모두 번성한 수준 높은 문화국가였음이 중국 문헌에 묘사되고 있다. 그렇다면 발원의식은 특정 종교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 죽음과 관련한 문학작품에서 보편적으로 추출되는 주제라 하겠다. 죽음에 관한 소재를 발원의 주제에 담고, 시적화자와 대상의 관계가 가족관계에 놓인다는 점에서 이 노래와 가장 근사한 문학작품은 <제망매가>이다. <숙세결업가>는 <제망매가>의 정서적 이동과 시적 구성을 4구체의 형식을 빌려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형식의 제약으로 인해 현실적 비탄의 구성 요소가 현저히 압축되었고 미래를 향한 발원의식은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된 것이다. 관점을 달리 해 본다면 4구 형식을 택한 것 자체가 죽음의 노래를 그들이 인식하는 방법과 관련되어 있다고도 하겠다. 비탄의 정서를 숨기고 발원의식을 강조하려는 태도는 4구 형식으로 충족된 것이다. 이는 죽음 혹은 노래를 대하는 방식, 삶 또는 죽음에 대해서조차 한 발 거리를 두고 여유와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했던 백제인의 사유와 닿아있다. 이와같은 발원의식의 문학적 형상화는 불교적 내세관과 사유를 표면에 내세우던 고려를 지나 유교를 국시화한 조선으로 들어서면 현저히 줄어든다. 이 점은 종교관의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며, 한편으로는 문학의 영역, 특히 국문문학의 갈래가 다채로워지면서 국문시가 등에서 직설적 정서의 토로가 가능해진 데 따른 결과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