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Ⅱ. 寶憙淵師․祇洹雲公과 寶亮法師․光宅法雲 同一人說 비판
Ⅲ. 今時此間의 지시 대상 검토
IV. 맺음말
요약
김성철 교수와 필자의 견해 차이는 ‘今時此間’의 승려로 언급되고 있는 ‘寶憙淵師’와 ‘祇洹雲公’이라는 두 사람의 승려의 성격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 기인한다.
김성철교수는 ≪대승사론현의기≫의 ‘寶憙淵師’와 ‘祇洹雲公’에 대하여 중국승려 寶亮 및 法雲과 동일인물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서 ‘寶憙淵師’는 ‘寶亮法師’의 誤寫, ‘祇洹雲公’은 ‘光宅法雲’의 별칭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렇지만 ≪대승사론현의기≫의 해당 부분에서 寶亮과 法雲이 각기 ‘(靈味)小亮’과 ‘光宅(法雲)'으로 나타나고 있고, 法雲이 祇洹寺와 관련될 수 있는 자료가 보이지 않는 등의 이유로 볼 때 별도의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기본 전제인 ‘寶憙淵師’ 誤寫說의 근거 역시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 아울러 김성철교수의 입론의 기반이 된 ‘寶憙淵師․祇洹雲公’과 ‘寶亮․法雲’의 사상적 동일성 역시 재검토 될 필요가 있다. 김성철교수는 ‘寶憙淵師’와 ‘祇洹雲公’을 수식하고 있는 ‘今時․此間’에 대하여도 ‘지금, 이곳’이라는 일반적인 의미 대신 ‘우리쪽, 이곳’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면서 남북조시대 중국 강남지방의 金陵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쪽’ 혹은 ‘이쪽’으로 해석 될 수 있는 ‘今時’나 ‘今’은 모두 삼론학파를 수식하는 것들이지만 ‘今時此間’으로 수식되는 ‘寶憙淵師’와 ‘祇洹雲公’은 삼론학파의 비판대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쪽’ 혹은 ‘이쪽’으로 해석될 수 없다. 또한 ≪대승사론현의기≫에 사용되고 있는 ‘此間’의 용례 역시 金陵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곳들로 해석되고 있다. 따라서 ‘今時此間’은 ‘지금, 이곳’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서, ≪대승사론현의기≫ 찬술되던 바로 그 시간과 공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김성철교수의 견해는 자료나 논리 어느 것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기 어렵다. ‘寶憙淵師’와 ‘祇洹雲公’은 일반적인 한문해석 방식에 따라서 ≪대승사론현의기≫가 찬술되던 무렵 [今時], 같은 장소[此間]에서 활동하였던 ‘寶憙寺의 淵師’와 ‘祇洹寺의 雲公’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해석이 될 것이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이름을 찾아보기 힘든 寶憙寺는 오직 백제의 수도부여에 있었던 것만이 확인되고 있으므로, 이들은 6세기 초 무렵 백제의 수도 부여지역에서 활약한 인물로 볼수있고, 이들이 백제지역의 승려라면 그들을 ‘今時此間’으로 일컫고 있는 ≪대승사론현의기≫ 역시 백제의 수도 부여에서 찬술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