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五經博士
1. 梁과 五經博士
2. 五經博士의 성씨
3. 博士와 五經博士
Ⅲ. 梁의 문화와 吳音
1. 文選과 玉篇
2. 千字文과 論語義疏
3. 일본 고대의 한자음과 吳音
Ⅳ. 맺음말
요약
이 글에서는 오경박사 등이 출자, 오경박사가 전래한 양의 문화, 그리고 양의 문화가 일본 고대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아울러 오경박사의 존재가 일본 한자음 중 오음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대체로 왜에 파견된 오경박사는 백제의 관인으로 보고 나아가서는 백제의 관인제 속에 오경박사가 제도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백제가 왜에 파견한 오경박사는 백제의 관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오경박사를 백제의 관인으로 보는 통설은 의문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오경박사는 대개 중국의 성씨를 가지고 있으며, 낙랑․대방계의 한인으로 볼 수만은 없다. 그리고 513년에 과연 백제가 국내의 관인으로 양성된 오경박사를 파견할 수 있었다면, 왜 그 이후에도 양에 지속적으로 오경박사의 파견을 요구하였는지도 의문이다.
이러한 의문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백제가 왜에 파견한 오경박사는 고덕, 마정안을 제외하고는 양의 관인으로 보는 것이다. 최초로 파견된 단양이는 512년에 양에 파견된 백제사신단과의 관련성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마정안이 파견된 것은 양의 국내사정으로 549년에 파견된 백제 사신이 제때 귀국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경에 대한 소양을 가지고 있는 백제 관인을 파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554년에 파견된 왕유귀의 경우는 549년에 파견되었다가 552년 이후에 귀국한 백제사신단과 관련시켜 생각할 수 있다. 또 왕유귀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오경박사에 대한 기록이 단절된 것은 오경박사의 공급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왜에 파견된 오경박사들이 양의 관인들이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양의 문화를 일본열도에 전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중 일본의 한자 음가 중에서 오음의 성립이라는 문제와 왕인․오경박사․천자문․옥편․문선을 관련시켜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문제의 제기에 그쳤을 뿐이다. 특히 옥편의 음가와 오음의 음가 사이의 관련성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