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백제의 정부조직을 고찰하였다. 먼저 고구려는 소노부․계루부․절노부․순노부․관노부의 5부족이 형성되어 정치적 기반을 이루었다. 처음에는 소노부에서 왕이 나왔으나 태조왕 때부터 계루부가 이를 대신하였다. 이 5부족은 고구려의 중심세력이 되었고 중앙집권제가 확립됨에 따라 행정구역으로 발전하였다. 고구려 초기의 관제는 왕 아래에 상가․대로․패자․주부․우태․승 등의 관리가 있었으며, 왕과 각 부족장인 대가는 그 밑에 사자․조의․선인 등의 가신을 거느렸는데, 왕가의 가신이 격이 높았다. 왕족은 부족장이 아니라도 대가의 자격을 가졌는데, 이것을 고추가라고 하였다. 이 밖에 전에 왕위를 차지한 소노부의 대가와 대대로 왕실과 혼인한 절노부의 대가도 고추가가 될 수 있었다. 고추가는 「귀인」이란 뜻이다. 관등조직은 여러 차례 변하였으나 평양천도 이후 더욱 정비되어 수상에 해당하는 1등 대대로에서 2등 태대형, 3등 울절, 4등 태대사자, 5등 조의두대형까지는 최고 귀족들이 차지하였으며, 수상인 대대로는 원칙적으로 3년에 1번씩 선출하였다. 그리고 관등명의 형은 연장자라는 뜻으로 족장의 자리를 계승한다는 뜻이며, 사자는 지방의 조세 징수자를 뜻한다.
다음으로 백제의 행정조직은 고이왕 때에 6좌평․16등 관계가 마련되었다고 하나, 근초고왕 때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좌평은 행정부의 장관으로 최고 관계이며 6명을 두었다. 그런데 초기의 16등 관계는 그 자체가 바로 관직의 명칭인 동시에 관등을 표시한 것이 특색이었다. 6좌평과 16등 관계의 명칭은 중국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그 뒤 성왕 16년(538)에 사비로 도읍을 옮겨 도성을 경영하면서 제도도 정비하게 되었다. 이때 6좌평 이외에 22부가 마련되었다. 한편 6세기 초까지 지방에는 22담로가 설치되고 왕족이 임명되어 지방행정을 맡아보았으며,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나서는 수도에 5부 5방 제도가 성립되었다. 각 부는 500명의 군사를 거느린 달솔이 다스렸으며, 각 방의 중심인 방성에는 700~1200명의 군사를 두었는데, 방령․방좌가 이를 통솔하였다. 방 밑에는 많은 군이 설치되었고, 군에는 군장이 있어 역시 군사를 거느리고 다스렸으며, 요지에는 성을 쌓아 수비병을 두었다. 백제의 멸망 당시 이러한 군이 37개, 성은 200개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백제는 군사적 체제를 기본으로 하는 정치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필자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