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王都로서 익산 관련 기사 검증
1. 『觀世音應驗記』의 분석
2. 王都로서의 익산 관련 기사
3. 王都의 由緖로서의 ‘後朝鮮’ 傳乘
Ⅲ. 익산 王都 反對論의 문제점
1. 離宮說․미완의 王宮說 등의 검증
2. 익산 천도 부정론에 대한 검증
Ⅳ. 맺음말
요약
日本 京都의 한 사찰에서 발견된 『觀世音應驗記』라는 佛書는 백제 무왕대의 천도 사실을 알려 주었다. 무왕이 미륵신앙과 관련한 장대한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천도한 곳을 枳慕蜜地라고 하였다. 지모밀지는 현재의 전라북도 益山을 가리킨다. ‘枳慕‘의 地名語尾格인 ’蜜地‘는 글자의 뜻으로 볼 때 樂土나 福地 개념을 연상시킨다. 즉 고유지명을 新天地개념의 ’枳慕樂土‘의 뜻을 담아 표기한 것이다. 여기에는 익산 新王都에 대한 이상향적인 염원이 담겨 있었다.
『觀世音應驗記』기록을 軸으로 하여 익산이 王都였던 기록을 샅샅이 찾아 보았다. 그 결과 『삼국사기』에도 백제 무왕이 익산을 王都로 삼았던 중요한 단서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익산에서 ‘開國’했다는 기록과 副首都를 가리키는`別都` 기록 역시 익산이 王都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 사서인 『구당서』에서 “그 왕이 거처하는 곳은 東과 西쪽 2개 城이다"는 기사도 부여와 익산이라는 2곳의 王都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아울러 백제 말기에 왕궁이 사찰로 바뀌었다는 주장을 검증한 결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익산과 관련해 백제의 別宮說·離宮說·行宮說·別都說·미완의 王都說(천도 계획설) 등을 검증한 결과 諸說의 오류를 죄다 밝힐 수 있었다. 이 밖에 익산 지역에 전해져 온 후조선 준왕의 南來地와 관련한 전승도 기실 백제 王都였던데서 遡及·投射된 逆傳承임을 밝혔다. 이 사실 또한 왕도로서의 익산이 지닌 由緖와 역사적 비중을 일깨워준다. 결국 기록에 대한 입체적인 그리고 交叉確認을 통해 익산 지역은 백제의 王都였다는 진정성이 입증되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