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河北慰禮城~河南慰禮城과 十濟~百濟
Ⅲ. 前秦과의 관계
Ⅳ. 무왕의 왕비 문제와 `大王陛下`
Ⅴ. 웅진도읍기 지명 문제 - 맺음말에 대신하여
요약
본 논문은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의 주석 부분에 앞으로 보완해야 할 사항을 정리해 본 것이다. 초기백제가 하북위례성에서 하남위례성으로 천도하였을 때 최초의 중심지는 풍납토성 내부에서 발굴된 3중 環濠에 비정할 수 있다. 이때 백제의 국호는 十濟에서 百濟로 바뀌었다. 伯濟國과 百濟國은 동일체로서 표기상의 차이이지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와 前秦과의 교섭 기사가 없다. 그러나 <百濟王銅虎符>, 左賢王?右賢王, 烝土築城 기사는 백제와 전진과의 교섭과 교류를 보여준다. 따라서 백제와 전진과의 교섭은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륵사지사리봉안기>를 통해 백제 무왕에게는 의자왕을 낳은 부인, 선화공주, 沙?氏 왕후 등 복수의 왕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大王陛下’는 백제왕이 국내에서는 황제와 같은 존재로 군림하였음을 보여준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