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불교는 토착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하나의 격의불교로 이해, 신행됐고 말기 이르러 본래적 불교를 이해, 신행하게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불교가 토착적인 격의 불교의 한쪽을 대표한다면 백제불교는 본래적인 불교의 또 한쪽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문헌의 자료가 없어 구체적으로 단정할 수 없으나 고구려의 경우 불교공인의 역사가 앞서 만큼 신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왕즉불불교는 벗어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말년에 진덕이 열반경을 구했다는 것을 보더라도 고구려불교도 상당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고구려불교는 연개소문의 도교진흥 정책에 밀려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 시대의 불교는 특히 신라에서 왕권과 신분질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나 동시에 이 땅에 만민평등을 깨우쳤었다. 또한 주술적인 면도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윤리적이고 주체적인 인간관을 가르침으로써 반주술적 가르침의 역할을 다 했다.
이런 관점에서 열반경과 율은 삼국시대 불교가 성숙한 최종적단계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열반경은 그 법신설을 통해 형이상학적 사변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치권력의 정당화라는 측면에서 왕즉불불교가 청동기시대 이래 전통적인 왕자천손설의 불교적변용인데 비해 삼국시대말 성숙한 불교에 이르러 비로소 이를 극복, 본래적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됐다. 이는 만민평등의 기초 위에 정치권력도 윤리적인 관점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정치권력이 신성을 탈피하게 된 것이다. 문헌으로 볼 때, 백제 불교가 가장 두드러지게 이단계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아마 고구려불교도 신라에서와 같은 왕즉불불교단계는 벗어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왕권의 신성탈피 문제는 앞으로 선도 및 유교를 다루면서 재론하고자 한다. (필자 맺음말)